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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건강한 기업생태계


가끔 일본을 갈 때마다 울창한 삼림에 놀라게 된다. 군인이 열병하듯 줄지어 빽빽하게 가꿔진 나무숲이다. 근데 이렇게 잘 가꾼 듯한 숲이 문제란다. 원래 너무 촘촘하게 심은 데다 간벌을 못하다 보니 나무들은 어깨를 맞대고 하늘만 향해 위로 자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단다. 숲 속에 햇볕이 들지 않아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할 뿐 아니라 나무는 웃자라 건강하지 못하게 돼 숲이 황폐화의 길을 걷고 있단다.

기업의 생태계도 숲의 생태계와 비슷하다. 건강한 숲엔 어린 나무가 자라날 수 있는 공간과 햇빛이 있어야 하듯 건강한 기업 생태계엔 창업 활동이나 중소기업의 활동 공간이 있어야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사람에 의해 혁신이 일어나고 새로운 기업이 탄생한다. 창업 절차가 용이하고 대기업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장이 건강한 생태계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기업 수로 보면 약 312만개로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하고 고용 인원으로 보면 전체 취업자의 86.8%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이나 영국의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이 60% 내외이고 일본이나 대만이 76% 전후인 것에 비하면 우리는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이 유난히 높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영세한 중소기업이 대부분의 고용을 감당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강하다는 독일은 1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 고용된 인력이 15%에 불과하나 우리는 48%가 10인 미만의 영세기업에 매달려 있다. 50인 규모의 기업으로 확장해도 독일은 34%이나 우리는 71%의 고용이 소규모 기업에 집중돼 있다. 정권마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펼쳤지만 아직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적고 효율성이 낮고 영세한 기업이 대부분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직후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하는 등 관심을 많이 쏟고 있어 새로운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기대가 높다.

중소기업 정책의 성패는 기업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차별화된 처방이다. 중소기업을 활성화하려는 목표에만 매달리다 경제 전체를 보지 못하거나 잘못된 진단에 대한 처방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성공적인 중소기업 정책의 첫째는 중소기업 정책이 제로섬(zero-sum) 게임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나 제도를 고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책이 이들을 적대적 관계로 만들면 안 된다. 상생해서 포지티브섬이 되도록 하는 제도여야 지속 가능하다. 둘째는 중소기업 생태계의 치열한 경쟁 구도와 높은 실패율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계는 일반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고 경쟁이 치열해 매년 80만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생겨나고 문을 닫는다. 그러므로 중소기업 지원 정책은 가능성 있는 기업, 능력 있는 기업가를 구별하고 지원 체계를 효율화해 좀비기업이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는 다양한 중소기업의 문제를 진단, 차별화된 처방을 하는 일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에서 추정해보면 11만 3,000여개의 제조업 중소기업 중 대기업과 협력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은 약 15%이며 독자적으로 수출을 위주로 해(적어도 30% 이상) 영위하는 중소기업은 약 10%에 달한다. 나머지 중소기업은 국내 시장을 주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이렇게 보면 중소기업 정책은 대증적 처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 중소기업에 대한 맞춤형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이 유난히 높은 우리에겐 영세한 중소기업 문제의 해결이 바로 일자리 문제와 중산층 문제, 사회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하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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