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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학생 “복도에 나와 구조 기다린 학생들 많아...3~4명만 살았다"

세월호 생존학생 “복도에 나와 구조 기다리던 학생들 많아...결국 3~4명만 살아”

세월호 학생들이 사고 직후 자력으로 갑판 등으로 나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을 믿고 기다리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주장이 학생들의 입을 통해 직접 제기됐다.

세월호 관련 재판을 심리하는 광주지법 형사11부(임정엽 부장판사)는 29일 특별심문기일을 열고 단원고 생존학생들에 대한 두 번째 증인심문을 실시했다. 이날 오전에는 생존 여학생 7명이, 오후에는 남학생 10명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생존학생들은 28일에 이어 세월호 참사 당시의 혼란스럽고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 상세히 진술했다. 승무원·해경들로부터 구조되기만을 기다렸지만 결국 일반승객 또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던 당시의 절박함이 생생히 드러났다. 특히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있다가 참사를 당했다는 증언도 속속 나왔다.



A양은 “당시 안전봉을 잡고 올라갈 수도 있었고 선미 쪽으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누군가 구하러 올 줄 알고 계속 복도에서 기다렸다”며 “물이 계속 차올랐지만 그래도 구조를 믿고 기다렸고, 그러다 물이 방 앞쪽까지 차오르자 친구 두 명이랑 함께 물로 뛰어들어 잠수하다가 손에 잡히는 걸 아무거나 잡고 겨우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총 3명이 물에 뛰어들었는데 친구 한 명은 결국 같이 나오지 못했다. 방에도 10명에서 스무명 정도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 포함해서 결국 2명만이 나왔다”며 눈물을 흘렸다.B양은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헬기가 왔고 탈 수 있는 사람만 손을 들라고 해서 나는 손을 들고 나왔다”며 “무서운 아이들은 곧 10분 내로 해경이 오니깐 걱정 말고 기다리다가 배를 타면 된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헬기 타고 하늘에서 본 후에야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내가 나온 게 10시 넘어서였는데 배가 기울어지던 9시 무렵부터 나가라고 했다면 많이 살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는 슬픔과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도 많았다. C양은 “같은 선실에서 해경이 오기만을 믿고 기다리던 10명 정도의 사람 중 나만 구조된 것으로 안다”며 “이런 일이 발생한 게... 우리 학교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간다”고 울먹였다. D양은 “(배가 많이 기운 후에는) 복도에 있던 친구들이 나오면 중앙 계단쪽으로 다 미끄러졌고 우현쪽 아이들도 레크레이션 방으로 미끄러졌다”며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오기가 어려웠고 복도쪽에서 대기하던 아이들이 매우 많았지만 그 중 앞에 있던 3~4명만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전날에 이어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호소하며 증언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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