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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좋은 오너, 나쁜 오너, 힘 못쓰는 오너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jshong@sed.co.kr


최근 기업체 임원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오너십이 화제가 됐다. 공교롭게 참석자 중 몇 명이 과거 재벌그룹에서 일하다 오너의 잘못된 경영으로 회사가 몰락하고 주인이 바뀌는 아픔을 겪은 터라 당시 뒷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오갔다.

지금은 사라진 쌍용그룹이 말머리에 올랐다. 쌍용호를 이끌던 김석원 전 회장은 지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재계 6위에 오를 정도로 성공한 2세 경영인이었다. 하지만 쌍용은 부채가 많은 쌍용차를 인수하는 등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외환위기(IMF) 때 자금난을 겪으며 해체됐다. 당시 쌍용에 몸담았던 임원은 "김 회장이 쌍용차를 인수하려던 이건희 삼성 회장과 담판까지 벌였지만 3조원을 요구하며 1조원을 제시한 이 회장의 안을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다"며 "김 회장이 욕심부리지 말고 삼성으로 넘겼다면 그룹이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4월 고인이 된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도 비슷한 경우다. 1988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총수가 된 장 회장은 8년 만에 계열사를 5개에서 60개로 늘리는 등 외형을 급팽창시켰다. 그러다 IMF가 닥치면서 재무구조가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부도를 냈다. 진로의 마지막을 지켜봤다는 한 참석자는 "글로벌 주류업체와 매각이 거의 성사 단계였는데 장 회장이 개인 부채까지 넘기려는 이면 계약을 요구하다 딜이 깨졌다"고 비사를 전했다.

SK·CJ, 오너 공백에 성장 멈춰 한숨

공중분해된 새한그룹도 마찬가지. 1997년 삼성에서 독립한 이재관 전 부회장은 쇼핑·게임 등 신규 사업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고 거액을 투입한 필름 사업도 적자에 허덕이다가 헐값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경영권에 집착하면서 주력인 새한보다 가능성 없는 새한미디어에 마지막 남은 자금마저 수혈하는 통에 청산 절차를 밟게 됐다는 것이 당시 상황을 목도했다는 한 임원의 쓰라린 회고였다.

이들 오너의 공통점은 그릇된 판단과 경영으로 기업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회사와 직원은 물론 국가 경제까지 위태롭게 했다는 점에서 나쁜 오너십의 전형으로 불릴 만하다.

이와 달리 최근 서울 시내 면세점 혈투에서 승리의 축배를 거머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오너십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몸소 입증한 예로 비견될 만하다.



이 사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인한 초유의 위기에서도 즉각 제주호텔의 영업을 중단시키는 한편 본인은 호텔에서 투숙하는 등 강인하고 신뢰 가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후에도 국내외 가릴 것 없이 현장을 누비며 면세사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각인시켰다.

김 회장은 초반 열세에 면세점 사업의 당위성을 전 계열사에 지시하며 일사불란한 총력전을 진두지휘했다. 또 한류 관광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는 등 통 큰 베팅과 김 회장 특유의 뚝심으로 막판 대역전극을 끌어냈다. 이 사장과 김 회장 모두 예상을 깬 '신의 한 수'와 과감한 추진력을 앞세워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박수 받아 마땅한 오너십이라는 평가다.

반면 면세 대전에서 초반 유력 후보로 꼽혔다가 분루를 삼킨 SK그룹은 '총수 부재'의 한계를 절감한 사례다. 올 초 KT렌탈 인수전에서도 승기를 잡았지만 막판 롯데에 밀렸다. 2012년 2월 최태원 회장의 지휘 아래 하이닉스를 인수한 후 3년 반 동안 제대로 된 인수합병(M&A)은 한 건도 없다. 표류하는 배에 선장의 존재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위기 돌파할 '불굴의 오너십' 절실

CJ그룹 역시 이재현 회장이 2013년 7월 구속 기소된 뒤 긴 터널에 갇혀 있다. 매출 30조원 돌파와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내세운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그룹의 성장을 좌우할 만한 조 단위의 M&A와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가 올스톱된 결과다. 이 회장은 현재 대법원 상고심을 앞두고 있는데 건강 상태가 심각해 CJ의 미래는 바람 앞의 촛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저녁 자리가 끝나갈 쯤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업은 지속성장으로 고용을 창출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내수를 활성화하는 등 국가 경제에 이바지해야지요. 이 모든 키를 쥐고 있는 것이 오너인 만큼 국가 경제에서 올바른 오너십은 상상외로 중요합니다." 한국 경제가 벼랑 끝에 서 있는 요즘이야말로 산적한 난제를 속 시원하게 풀어줄 '불굴의 오너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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