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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임시헌법의 허실

이라크 임시 헌법이 마침내 마련됐다. 내년 정식 헌법이 출범하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기에 임시라는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영구 헌법이 이를 토대로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잠시 사용되고 폐기된다는 의미의 임시적인 것은 아니다. 새로운 주권국가로서의 이라크 탄생을 위한 실질적인 토대라고 보는 편이 오히려 정확하다. 이라크 국민들을 독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이라던 전쟁이 시작된 지 약 1년 만이다. 헌법의 일부 내용만을 보면 이라크 국민들은 이제 독재의 횡포라는 공포를 벗어 던지며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에 살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인다. 임시 헌법은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했고, 여성의 정치 참여도 의무화했다. 민족간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연방제를 도입하는 지혜도 발휘했다. 중동법 전문가이자 이번 이라크 헌법을 작성하는 데 자문 역할을 했던 노아 펠드만 미 뉴욕대학 교수는 전세계 헌법의 장점만을 취합해 만든 일종의 `하이브리드(hybrid) 헌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조합된 하이브리드 헌법의 경우 리스크가 큰 것도 사실이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법원(法原)으로 인정하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 하이브리드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 미국의 압력에 따라 그만큼 철저하게 전통이 배제됐기 때문이다. 삶의 변화를 야기하는 새로운 헌법에 대한 국민들의 충분한 이해와 동의가 전제되지 않는 한 하이브리드는 장점의 결정체가 아니라 그저 잡동사니의 총체로 결론 날 수도 있다. 이라크 국민들 가운데 헌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지난 9일자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는 그래서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신문이 인터뷰한 사람들 가운데 헌법에 무엇이 담겼는지,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라크 불안이라는 대선 행보의 최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급조한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이론이 현실을 담보할 수는 없다. 특히 상대성이 인정되고 존중돼야 하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할 때 이라크인의 해방이라는 전쟁 명분은 이제 어디에서도 그 정당성을 얻지 못할 것이다. <최윤석 국제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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