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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전통] 온세상을 담은 조선 지식인의 서재… 지금 당신은 어떤 서재를 갖고 있나

■ 서재에 살다(박철상 지음, 문학동네 펴냄)

담헌 홍대용·여유당 정약용 등 24명 서재에 아로새긴 지식인 삶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조선사회'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아주 까마득히 먼 옛날처럼 느낀다. 불과 100~200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그 시대가 현대 한국사회와 생활양식이나 문화 면에서 마치 다른 나라이기도 한 것처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로는 현대적 관점에서 과거를 재단하기도 하고 거꾸로 과거가 옳다면서 현대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는 입장에 서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두 책 '서재에 살다'와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는 조선이라는 전통사회와 조선말·일제강점기라는 근대사회를 이어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진짜 전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변용과정을 거쳐 현대에 이르게 됐는지, 우리가 앞으로 지킬 것과 고쳐나갈 것에 대해 차분히 설명

담헌, 연암, 여유당, 완당 … 귀에 익숙한 이 단어들은 조선 시대 뛰어난 학식으로 이름을 날린 학자들의 호(號)이지만, 동시에 이들의 서재 이름이기도 했다. 조선의 지식인은 서재의 이름을 호로 삼아 그 안에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담았다. 단순히 책을 읽던 방을 넘어 또 하나의 세계이자 공간의 주인과 같은 존재가 바로 서재였던 셈이다.

"지식인으로서의 삶은 서재에서 시작되고 갈무리되었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조선 시대 지식인 24명의 '서재 이야기'를 중심으로 북학과 개혁의 시대였던 19세기 지식인의 면모를, 그들이 그 공간에 아로새긴 삶과 가치관을 소개한다. 왜 19세기일까. 저자는 "19세기야말로 지금 우리 문화의 싹이 튼 시기"라고 강조한다. 청나라 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우자는 '북학'을 중심으로 어느 때보다 외국 문화·문물과 접촉이 빈번해 풍성한 문화의 틀을 만든 시대가 바로 이때이기 때문이다.

담헌 홍대용은 일찍이 외래 문명에 관심을 두고 당시로선 금기시되던 청나라 지식인들과 깊은 우정을 나눈 인물로 유명하다. 1767년 홍대용이 충청도 수촌 마을에 집을 짓고 서재를 만들자 그의 스승은 편액(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에 담길 글귀를 '담헌'(湛軒)이라 했고, 홍대용은 그것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맑을 담(湛)에 집 헌(軒), 바로 '마음이 비어 있고 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의미다. 그의 청나라 친구 반정균이 남긴 기록을 통해 담헌이란 공간과 담헌이란 인간에 대해 엿볼 수 있다.



'추사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역시 보담재(寶覃齋), 완당(阮堂)이라는 또 다른 호를 갖고 있다. 24세 때 생부 김노경과 함께 청나라에 연행(燕行·사신이 중국에 가는 일)을 간 그는 학문적 스승인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당시 청나라에서 손꼽히는 명사였다. 약 2개월의 연행을 마친 뒤 귀국해서도 김정희는 두 사람과 편지로 가르침을 받았다. 보담재라는 김정희의 서재 이름, 즉 당호(堂號)는 호가 담계였던 옹방강을 존경한다는 의미를, 완당이라는 서재의 편액은 완원을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취적인 학자들의 사고가 담겨 있는 서재가 있는가 하면, 세상 끝 은거지로서 조심스러운 학자의 삶이 담긴 서재도 있다. 다산(茶山)이란 호로 유명한 정약용은 여유당(與猶堂)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저술을 정리한 문집의 이름도 여유당전서다. 여유당은 그가 서재에 붙인 당호다. 여유당은 정약용의 인생과 철학을 요약하는 단어로 노자의 도덕경 15장에 등장하는 '여(與·코끼리)가 차디찬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유(猶·의심 많은 원숭이)가 사방에서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하라'라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짧은 단어 속에서 극심한 세도정치와 당쟁이 판치던 조선 후기에 몸과 마음가짐을 다잡으려 했던 그의 고달픈 인생이 느껴진다.

이처럼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서재 이름은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실마리이자 한 시대를 이해하는 통로다. 24개 당호에 담긴 개인과 시대의 사연, 문화, 철학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서재를 갖고 있느냐'고.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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