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를 몸소 지나온 한 중국 지식인의 '고해성사'가 책으로 엮어졌다. 저자는 베이징대학의 '정신적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로 루쉰 연구의 1인자이자 문화대혁명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지식인이다. 그는 현재 중국에서 양심적이며 철두철미한 비판적 지식인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의 단독 저서로는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저자의 '반성'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수십 년 동안 항상 사람을 잡아 먹어온 이곳, 나도 그 속에서 오랫동안 섞여 살았고 모르는 사이에 나도 사람 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당시 그의 내면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단 이것은 그만의 고통이 아니었을 터.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저자와 같은 1950∼1960년대 지식인이 겪은 공통된 공허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동년배 지식인들을 혁명세대와 개방세대에 낀 '역사적 중간물'이라 칭한다.
이후 저자는'지식인은 체제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진다. 그는 중국 현대 지식인의 실제 지위는 관가의 어용 문인(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그 밖의 권력 기관에 영합하는 사람)이거나 협력자에 불과한데도, 스스로 시대의 양심·국가의 동량(한 나라나 집안을 떠받들어 이끌어 갈 젊은이)등 사회구조의 주체로 인식하는 현상을 과감히 꼬집는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며 진정한 지식인은"비판정신 및 현실과 이상의 격차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이렇듯 중국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톈안먼사건·개혁개방까지 파란만장한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지식인이 인권과 자존의 위기, 현실과 학문의 심각한 이율배반, 통제된 언론과 탄압, 극좌와 극우 양날의 비판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독립된 비판적 인문지성'을 투명하게 지켜왔는지 절절하게 토해낸다.
덧붙여, 이 책의 한국어판 역자는 중국(대륙) 출간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은 굵은 글씨로, 타이완 판에서 삭제된 부분은 엷은 글씨로 구분함으로써 중국 지배층이 두려워하고 금지하는 지식인들의 발언이 어떤 것인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야말로 비판적인 중국 지식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책이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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