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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클릭] 오얏나무 밑 갓끈


3당 합당 직전인 1989년 10월21일.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와 박준규 민정당 대표, 김종필 공화당 총재, 실세였던 정호용 의원이 한양컨트리클럽에서 골프모임을 갖기로 했다. 전두환 청문회와 3당 합당설이 파다한 상황에서 4인의 회동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으나 소식이 미리 새나가며 두 김 총재가 불참해 회동은 불발됐다. 두 김씨가 내세운 이유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불과 석 달 후 합당이 이뤄졌다. 소문이 진실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군자는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 중국 양나라 소명태자가 문장가 130명의 작품을 엮은 '문선'의 '악부'편에서 군자가 행할 도리를 언급한 내용이다. 악을 저지르는 행위도 나쁘지만 쓸데없이 의심을 사 분란을 일으키는 언행도 그에 못지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남에게 비난을 받는 책임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으니 언제나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항상 주변을 돌아보라는 세심한 충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군자행을 실천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기초연금 논란이 한창인 때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수사 중간결과를 발표한 것을 놓고 야당이 반발하자 검찰은 "도대체 언제 하면 국면전환용이 아니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고 수사에 진척도 있는데 언제까지 서랍 속에 넣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시점이 너무 공교롭다. 불과 얼마 전 세법 개정안 파동이 일었을 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진 것도 의혹을 키웠다. '아니 땐 굴뚝'보다는 '오얏나무 밑 갓끈'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 잡은 권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과거라지만 정권이 위태로울 때마다 간첩, 국가전복음모 사건을 조작해 국민들을 호도한 게 누구였던가.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는 시늉을 하면서 실제로는 과실을 제 품 안에 훔쳐 넣는 모습을 지금까지 너무 많이 봐 왔던 국민들이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랴. 모두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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