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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3代 우울한 추석

설 이후 8개월만에 다시 고향을 찾는 김선호(47ㆍ서울 구로구 독산동)씨 가족의 발걸음은 여느 해보다 무겁다. 아버지인 김씨는 추석 연휴가 끝나면 구조조정이 기다리고 있다. 불황을 겪고 있는 직장은 부장급 간부사원을 대거 정리하기로 하고 그 시기를 추석이후로 잡았다. `사오정(45세 정년)`이란 속어가 피부에 와 닿는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경기도 평택)을 찾아 가지만 도통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 큰 딸 아름(23)씨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졸 `백조`인 그녀는 시골 할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 집에 남겠다고 버티다 부모를 따라 나섰지만 “직장은 어디냐?” “시집가야지?”하는 친척들의 인사에 어떻게 대꾸할 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친구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자위하지만 남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다. 평택에서 이들을 기다리는 김세중(72)씨의 입술은 더욱 마른다. 그치지 않는 비로 농사가 10년만에 처음 겪는 흉작이다. 손주들에게 내줄 과일도 대부분 골아 떨어졌고, 차례상에 올릴 실한 것도 몇 안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작은 아들로부터 `회사 일이 바빠 못 내려간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김 노인은 임금을 받지 못한 아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날씨마저 잔뜩 흐리다. 비에 젖은 추석은 이래 저래 우울하기만 하다. 3대가 겪는 음습한 추석 상황은 비단 김선호씨 가족만의 풍경은 아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비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실종된` 추석의 풍요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정이 개선될 조짐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용안정은 갈수록 빡빡하고 청년실업은 해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벼농사는 95년 이래 최악의 흉년이 예상된다고 한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이며 과일 값은 전년의 두배 수준으로 뛰고 있다. 김 할아버지 둘째아들이 다니는 중소기업은 10곳중 3곳이 이번 추석때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급여를 지불하지 못한 업체도 2,612개에 체불임금은 2,612억원으로 작년보다 37.4%나 늘었다. 차안에서 들리는 `귀향길은 장대비, 귀경길은 폭풍우`라는 예고가 귀성객들을 더욱 짙누르는 올 추석 풍경이다. <김홍길기자 wha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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