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블라터(78·스위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말이다. 그는 15일(한국시간) 브라질 월드컵 결산 기자회견에서 '경기장에 당신이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야유가 쏟아졌다'는 취재진의 얘기에 이같이 답변했다. 지난 1998년부터 FIFA 회장을 맡아 회장만 17년째인 그는 FIFA를 망가뜨린 원흉으로 악명 높다. 그동안 월드컵이나 컨페더레이션스컵 등에서 연설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블라터에 대한 관중의 거부반응이 심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연설 자체를 생략했지만 전광판에 그의 얼굴만 보여도 야유가 빗발쳤다. 하지만 블라터는 욕먹는 일이 그저 자신이 앉은 '자리' 때문이라며 태연한 모습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회를 "10점 만점에 9.25점"이라고 자평하며 트위터에도 "2014 월드컵은 특출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BBC 설문조사 결과 가장 많은 39%가 이번 대회를 역대 최고의 월드컵이라고 답변하는 등 흥행에서는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 흥행은 선수들의 뛰어난 경기력 때문일 뿐 FIFA의 공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잔치는 끝났고 FIFA가 최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내년 6월 임기가 끝나는 블라터는 사실상 5선 도전을 선언했지만 이번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카타르 스캔들'이다. 무함마드 빈 함맘(카타르) 전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이 카타르의 2022년 월드컵 유치를 밀어달라며 아프리카·카리브해 인사들에게 500만달러의 뇌물을 건넸다는 영국 언론의 보도가 지난달부터 축구판을 뒤집어놓고 있다. 현재 FIFA 윤리위원회의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이르면 이달 중으로 조사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보도를 통해 일부 물증까지 공개된 마당에 조사결과가 미흡할 경우 후폭풍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FIFA가 협력업체를 통한 암표 장사로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의혹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월드컵 입장권 판매 대행을 맡은 이 업체는 FIFA에 2억4,000만달러를 주고 2009년에 사업권을 따냈는데 블라터 회장의 조카가 이 업체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암표를 팔다 적발된 이 업체 대표는 현재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블라터는 암표 장사에 FIFA가 직접 개입한 것 아니냐는 뉘앙스의 질문이 나오자 "이 봐요, 부패에 대해 말할 때는 증거도 같이 제시해야 하는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선수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비난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결승전 전반에 상대 선수와 충돌해 머리를 다친 크리스토프 크라머(독일)는 경기 후 "전반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당시 그는 필드에서 치료를 받았고 이후 사이드라인 밖으로 나와 몇 분간 추가 치료를 받은 뒤 다시 투입됐다. 크라머를 포함해 머리를 다치고도 곧바로 경기를 강행한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3명이나 됐다. 확실히 회복할 때까지만 다른 선수로 교체할 수 있게 하는 등 룰 개정을 검토할 만했지만 FIFA는 끝까지 귀를 닫았다. 국제축구선수협회는 15일 "최고 무대라는 월드컵이 머리 부상에 대처하는 나쁜 예를 보여주는 현장이 되고 말았다"며 FIFA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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