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움켜쥐고 있던 돈줄을 풀었다. 유동성 확대로 시중자금이 부동산 등으로 흘러가 거품을 더욱 키울 수 있지만 당장의 경제성장 둔화 흐름을 저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일단 인민은행의 긴급 유동성 수혈에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단기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위안화 가치는 5일 만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17일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금리는 전일보다 5bp(1bp=0.01%포인트) 떨어진 3.28%에서 거래됐고 이날 오전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0.03% 하락한 6.1443위안을 기록했다.
중앙은행의 유동성 투입은 현재 중국 정부가 택할 수 있는 경기부양책의 마지막 카드로 보인다. 리커창 총리가 통화량을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단기유동성지원창구(SLF)나 단기유동성조작(SLO)과 같은 단기 유동성 지원 외에 추가적인 유동성 지원은 어렵다. 중국 경제전문 매체인 왕이재경은 "이번 유동성 지원이 분기 말 은행의 자금경색을 예방하기 위해 단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물론 실물경제지표 하락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지만 광의통화(M2) 증가속도 등과 연말 자금 흐름 등을 고려한 일시적 자금공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변칙적인 완화정책=5,000억위안에 달하는 긴급 자금수혈을 중국 내 전문가들은 '변칙적 통화완화정책'이라고 규정한다. 시장이 기대하던 금리인하나 지급준비율 인하 대신 대규모 자금공급을 통해 경기부양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시장의 불안요인을 잠재우려 한다는 것이다. 취관화 국태군안증권 수석애널리스트는 "경기하강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 정부가 지준율과 금리 인하 없이 경기부양에 나서기 위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둔화 방어와 함께 시중 자금수요 급증에 따른 유동성 경색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도 보인다. 최근 은행권 등의 신주발행과 분기 말 자금수요 확대,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 자금수요 등을 사전에 대응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여기다 통화완화정책 불가라는 정책적 목표도 훼손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유동성 공급은 '절묘한 한 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리 총리는 앞서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경제개혁을 강조하며 재정지원 혹은 통화완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유동성의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사용해 시중 유동성 흐름이 비정상적일 경우 통화량 조절을 통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이번 조치도 이러한 '유동성의 구조조정'의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금융권 돈가뭄 해소 기대=이번 유동성 공급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중국 경제에 단비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올해 초부터 진행된 그림자금융 단속으로 은행권을 제외한 신탁 등 여타 금융권의 돈줄이 마른 상황에서 3개월 시한의 자금이지만 자금경색의 위기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로빙거 TCW그룹 애널리스트는 "경기둔화와 그림자금융 단속으로 돈줄이 마르자 인민은행이 부동산 부문의 팽창을 억제하면서도 그 밖의 대출자들 비용부담을 덜고자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부동산 등 특정 부문으로 쏠린 시중 유동성 상황도 다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시중 유동성은 지난 7월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후 8월에 다소 회복했지만 여전히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 이상 줄어들었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8월 사회융자총액은 9,574억위안(약 161조3,410억원)으로 시장 전망치인 1조1,350억위안을 크게 밑돌았다. M2 증가율도 12.8%를 기록해 직전 월 증가율인 13.5%에 못 미쳤다. 은행들이 경기하락을 우려해 시장의 유동성을 바짝 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유동성 공급이 지준율 0.5%포인트 인하 효과가 있는 만큼 은행권도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유동성 공급으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향후 몇 달 동안 반등해 올해 연간 성장률 목표인 7.5%를 달성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과 개혁, 두 마리 토끼 잡기는 계속=이번 유동성 공급이 본격적인 경기부양의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개월이라는 시한을 못 박은 상황에서 SLF의 효과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지난해 말과 올 2월 같이 SLO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며 숨통을 틔울 수 있지만 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 된다. 국신증권은 "부채규모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통화완화정책은 독이 든 술잔과 같다"며 "중국 정부가 통화완화정책을 취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중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경기부양책은 지금까지 진행했던 미니 경기부양책과 단기 유동성 공급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중국 담당 국장을 역임한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경제학 교수는 "중국 정부는 광범위한 신용팽창보다는 특정한 부분을 타깃으로 삼은 대책에 집중하고 있다"며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면서도 금융권 개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한 열망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