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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은 날카로운 눈과 예리한 콧날, 고집스런 입매 등 얼굴에서부터 카리스마를 풍긴다. 흡사 '날리는 듯한' 눈썹에서는 작가의 광기마저 느껴진다. 임권택 감독은 조금 유순하고 여유로운 얼굴이지만 눈동자에는 영혼을 꿰뚫을 듯한 열정과 집중력이 담겨 있다. 우리 동양화단에 몇 안 되는 초상화가인 손연칠 동국대 불교미술학과 교수가 그린 '이 시대의 초상'들이다. 손 교수는 이들 외에도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비롯해 미술사학자인 황수영ㆍ정형호 씨, 이종상ㆍ김선두 화백, 무용가 이애주 씨 등 문화계 명사들과 지인을 그렸다. 인사동 동산방화랑에서 43점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손 교수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전통기법을 이어받았다. 서양화처럼 명암을 이용해 외면 묘사를 중시하는 것과 달리 내면 표현에 집중한 것. 그는 18세기 화원인 이명기로부터 전해진 '육리문법(肉理文法)'을 적용했다. 얼굴을 그릴 때 사용하는 가는 붓인 면상필로 얼굴 근육조직과 살결을 따라 점과 선을 그려 땀구멍까지 생생하게 표현하는 전통 화법이다. 무수한 선의 반복이 입체감을 형성하는 이 화법은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5개월 이상이 걸린다. 이번 개인전을 열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린 이유다. "초상화는 외모보다 인품과 개성 같은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작가는 "눈동자와 입의 표현이 중요하고 손의 표정까지 포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그는 성삼문, 허난설헌, 양만춘, 의상대사 등 역사인물의 국가표준영정을 제작하기도 했다. 전시작 중에는 동남아 이주노동자나 작가의 이웃에 사는 지인의 모습도 있고 학생들 사이에서 위엄을 과시하거나 지친 모습의 작가 자화상도 볼 수 있다. 삶의 애환부터 역사의 흔적까지 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통해 작가는 우리시대의 정신적 좌표를 제시한다. 전시는 17일까지. (02)733-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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