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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한국과 미국의 예산 전쟁


지난 2004년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은 재선을 앞두고 상승하는 실업률 탓에 정치적 위기에 빠져 있었다. 돌파구로 마련한 게 경제 살리기를 앞세운 대대적인 감세 카드였다. 당시 부시 캠프는 상속세(estate tax)를 '사망세(death tax)'로, 세금 인하를 '세금 구제(tax relief)'로 부르며 세금 혐오증을 부추겼다. 단지 이름만 바꿔 불렀는데도 결과는 성공이었다.

부시 정권의 선거 프레임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금을 피하고 싶은 욕구를 파고든 탓이다. 반면 프랑스 대혁명, 미국의 독립 운동 등 과거 사례를 보면 무리한 과세가 정권 붕괴를 불러온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박정희 정권 붕괴의 씨앗을 제공한 것도 부가가치세 도입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었다. 과거로 갈 필요도 없이 프랑스ㆍ그리스ㆍ이탈리아ㆍ일본 등이 과세 문제로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오석 경제팀이 설익은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가 온 사회가 시끄럽다. '세금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이 팽배한 판에 형평성 논란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로 몸살을 앓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오는 9월 말까지 매듭지어야 하는 2014회계연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백악관과 공화당 간의 예산 전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겉으로만 보면 한국 정치권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꼼꼼히 들여다 보면 차이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점이 다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재정 절벽' 타개를 위해 공화당 의회 지도부를 백악관에 초청하거나 골프 라운드 행사를 갖는 등 물밑 소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바마, 정국 타개 위해 의회ㆍ대중과 소통 활발

오바마 대통령은 이른바 '민생 투어'라는 이름 아래 여기저기 강연 행사를 다니며 "공화당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 육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며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최근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정국 경색에 대해 구경꾼 화법을 자주 구사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또 하나는 백악관이나 공화당이나 예산을 둘러싼 논쟁의 접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보험 등에 재정을 늘려야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고 일자리가 늘어나 중산층이 복원되고 경제가 살아난다고 말해왔다. 반면 공화당은 세금이 줄어야 부유층 소비와 기업 투자가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치권은 어떠한가.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봉급쟁이 월급을 손댔다가 '세금 역차별'이라는 여론의 역풍을 만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민주당 역시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어느 계층이나 조세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장외 투쟁의 빌미를 잡았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은 이번 세제개편이 또 다시 기업 때리기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고용 창출을 최고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28%로 낮추는 타협안을 공화당에 제시했다. 교착 상태인 예산 정국을 타개하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미지근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기업과 부자는 다르다" 법인세 인하 카드

한마디로 한 나라 경제의 중추인 기업은 소득이나 자산이 많은 것에 불과한 부자와 동일선상에 놓고 때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상당수 국가들은 재정확보 등을 위해 부자 증세에는 적극적이지만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등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 부담을 줄여주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정치권 역시 이번 세제 개편안을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복지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어떤 예산안이 올바른지 진지한 논의의 장으로 삼았으면 한다. 최소한 '증세 없는 복지'라는 사탕발림은 버리고 세금을 더 내고 복지를 더 누릴지, 세금을 덜 내고 복지를 덜 누릴지 국민적 합의라도 도출했으면 한다.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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