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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 33. 배우는기쁨 신선한 체험
입력2003-06-15 00:00:00
수정
2003.06.15 00:00:00
요즘은 주로 임원이나 간부급과 의견을 주고 받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월 1일은 지방에 있는 물류부 직원들을 포함해 전사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을 마련했다. 경영자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면서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회사사정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비전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일부 직원들은 그런 자리를 통해 요구사항을 마음껏 풀어 놓았다.
직원들은 내가 인사 겸 하는 말들을 특별한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모임을 앞둔 며칠 전부터 많은 고심을 했다.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무슨 말이 직원들에게 의욕을 갖게 하고 위로가 될까..`
회사며 사회 분위기 등 여러 가지 상황도 염두에 두고 책도 뒤적이면서 심사숙고를 했다. 단 몇 사람이 이끌어가는 회사라도 경영자라면 나름대로의 경영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목표와 의지가 뚜렷하지 않으면 사업에 열정이 생길 리 만무하고, 더구나 자신이 불타 오르지 않고는 직원들의 가슴을 불태울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언제나 간부들에게 우리 회사의 운영방침은 `부서장 중심제`이며 그에 필요한 권한을 전적으로 부여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강조하는 것은 언제나 공부하는 부서장이 될 것이며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마인드를 갖춰 줄 것을 늘 부탁했다.
나 역시 부족함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며 사회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보니 1979년 나의 실수로 일어났던 끔찍했던 교통사고는 인생의 밑그림과 방향을 다시 설정하게 하는 보약이었다.
이전의 내 삶은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리는 생활이었다. 그 덕분인지 예림당은 창업이후 해마다 두 배 이상의 성장을 계속했다. 그러던 차에 발생한 교통사고는 나에게 질주를 가로막는 강력한 브레이크였다. 비로소 한걸음 물러서서 나의 존재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었고 경희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에 입학해 회사경영에 필요한 이론적 지식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를 포함해 대학원 수강생들은 30~60대까지로 연령층도 폭 넓고 자영업자ㆍ대기업 직원ㆍ영관급 장교ㆍ전문직 종사자, 그리고 정치 지망생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분야별로 전문학과가 있었지만 어느 강의를 수강해도 무방할 만큼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 나는 주로 경영학과 회계학, 인사관리, 노무관리 등의 강의를 중점적으로 수강했다. 강의는 일주일에 4일, 오후 5시부터 3시간 진행됐다.
교수들의 강의는 여러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학창시절 교육은 현실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이론적인 바탕이 될 뿐이지만 나의 경우 출판사를 운영하는 경영인이다 보니 강의내용이 모두 흥미를 끌면서 실생활로 원용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회계며 인사-노무관리, 특히 손익분기점을 산출하고 적정한 투자의 시기와 투자방법에 관한 강의는 회사를 이끌며 경영관을 정립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강의는 1년 동안 거의 빠짐없이 출석했고, 누구보다도 열심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다른 수강생들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이었고 종종 교수나 대학원장인 김점곤 박사와도 함께 어울리며 유익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주로 출판과 연관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교류는 새롭기도 하고, 특히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끼리 대화의 공통분모를 갖고 적절히 예의를 지키며 이루어지는 교류는 신선한 체험이었다.
회사 일로 한가할 틈은 없었지만 학교행사나 동문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2학기가 시작될 때는 총학생회 자문위원장을 맡았고 졸업 후 한동안 28기 총동문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 뒤 의기투합한 동문 28명이 모여 결성한 경원회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맥이 이어져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ㆍ예림 경기식물원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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