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고대 로마 장군이 해외 원정에서 돌아와 개선식을 할 때, 장군의 전차에 함께 타는 노예가 계속해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지금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고 있어도, 자신이 언젠가 싸늘한 주검으로 관 속에 들어간다. 우쭐대지 말고 다가올 죽음 앞에 겸손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건강할 때 죽음에 무관심하고, 아플 때는 부정한다. 사람을 살리는 게 직업이지만, 늘상 죽음을 접하는 의사도 다르지 않다. 죽음 앞에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당황스럽기는 매일반이다. 10여년 전 설립된 한국죽음학회 최준식 회장의 표현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소 죽음에 대해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가 죽음이 닥치면 벌렁 나자빠지는 그런 상황"에 있다. 우리나라 문화상 죽음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만큼 준비 없는 죽음을 맞는다는 지적이다.
팔순을 눈앞에 둔 원로 의학자와 20여년의 나이차가 있는 두 후배 의사가 대담집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사진)를 출간했다.
이미 존엄사에 관한 책을 3권이나 선보인 김건열(79) 전 단국대 의과대학장은 "우리나라에는 쇼크를 받을까 걱정해 환자에게 병을 감추는 이상한 전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연구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자기 병도 모르는 환자는 고통받고 주변 정리도 못한 채 '속아서' 죽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사시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사전의료의향서'를 법적으로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 경우 나이가 너무 많아 체력적으로 항암치료를 버티지 못합니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무조건 연명치료를 할 수밖에 없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누굴 위한 일입니까? 불치병 환자, 특히 노인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책은 연명치료와 안락사·호스피스 등 의사들이 현장에서 늘상 접하는 상황, 그리고 근사체험(임종을 앞두고 환자가 겪는 경험)은 물론 형이상학의 영역인 사후 세계에 대한 설명도 시도하고 있다. 또 서양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죽음에 관한 관점 및 법·제도·교육적 차원도 들여다본다.
지난 2007년부터 230여회의 죽음학 강의를 이어온 정현채(59) 서울대 의대 교수는 40대 후반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하는 고민이 죽음학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 현장에서 여러 환자의 임종을 봅니다. 무엇보다 건강할 때 죽음을 미리 생각해둬야 합니다. 우리나라선 그런 얘기를 '재수 없다'고 싫어하지만, 죽음이 다가오면 주변서 그런 얘기를 못해줍니다. 의사도 환자의 죽음을 '패배'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환자가 삶을 완성하는 과정으로서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의대 교육과정에 환자·가족과의 소통 및 죽음에 관한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책을 낸 출판사 대표이자 대담을 진행한 유은실(57) 울산대 의대 교수는 "이번 책은 국내외에서 출간된 죽음 관련한 책 30여권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물론 일반인도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또 준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에도 죽음학 관련 정규강의가 도입되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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