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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3월25일] 유럽경제공동체 출범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은 세계 역사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20세 초반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유럽은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유럽은 과거의 경제적 부와 정치적 영향력, 문화ㆍ정신적 맹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이 같은 목표를 위해서는 일단 뭉쳐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통합의 최종목표는 경제와 정치ㆍ외교ㆍ안보를 함께 하는 하나의 공동체, 이른바 유럽합중국의 탄생이었다. 유럽 통합을 위한 첫 단추는 1951년 4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KS) 출범. 석탄과 철강을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이탈리아ㆍ벨기에ㆍ룩셈부르크ㆍ네덜란드가 가세하면서 6개 회원국의 EKS가 창설됐다. 이어 1957년 3월25일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위한 로마조약에 서명했다. 하나의 유럽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EEC는 1959년 회원국간 관세를 철폐하고 역외수입품의 관세를 공동 결정하기로 했다. 1967년 7월에는 EECㆍEKSㆍ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하나로 합병돼 유럽공동체(EC)로 단일화됐다. 그후 EC는 계속 확대돼 영국ㆍ아일랜드ㆍ덴마크ㆍ그리스ㆍ스페인ㆍ포르투갈ㆍ오스트리아ㆍ스웨덴ㆍ핀란드가 가입하면서 명실상부한 유럽합중국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1987년에는 역내시장의 규제를 철폐하기 위한 단일유럽의정서를 발효하고 1991년 1월1일자로 단일시장을 출범시키는 경제통합을 이뤄낸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1993년 11월 정치ㆍ경제ㆍ통화 통합을 다룬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되면서 EC는 유럽연합(EU)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른바 유럽합중국을 목표로 한 정치통합의 길로 들어섰다. 유럽은 작은 땅에 여러 나라가 얽혀 있는 탓에 역사적으로 늘 경쟁과 대립, 그리고 이로 인한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는 중국과 이슬람 세력에 뒤져 있던 유럽이 역사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한 동인(動因)이 되기도 했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유럽인들은 반복되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오랜 꿈인 유럽통합을 모색한다.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이 석탄과 철강산업의 통합을 제창하며 꿈의 실현에 나섰다. 이 제안은 유럽연합이 이 날을 ‘유럽의 날(Europe Day)’로 기념할 만큼 유럽통합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듬해 4월 프랑스·서독·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발족시키면서 ‘유럽 합중국’을 향한 유럽인들의 먼 여정이 시작됐다. 1957년 3월 25일에는 6개국 대표가 로마에 모여 회원국 간 자본·상품·노동력·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한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창설에 조인함으로써 유럽통합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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