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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38.월급봉투 소회

요즘이야 대부분의 회사가 직원들의 급여를 통장에 입금 시켜주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40대 이상 직장인이라면 직접 받던 월급날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액수는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월급봉투를 받아 든 날의 뿌듯한 맛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 총각들은 호기 있게 `한잔`을 외치기도 하고 가정을 가진 이들은 안주머니를 꼭꼭 여미고 귀가를 서두르던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집에서는 반찬이라도 한 가지 더 장만해 가장을 기다리고,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온 아빠의 손에 과자 봉지라도 들려있지 않나 살폈다. 그러나 요즘은 급여통장 덕에 편리하긴 하지만 월급날의 설레임은 많이 줄은 것 같다. 예림당 창립 후 10여 년간은 직원들의 급여는 내가 직접 전달했다. 급여일이 공휴일이거나 출장과 맞물려있으면 미리 챙겼다. 그런데 직원들은 아마 한 가지 사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각자의 급여를 헤아려 봉투에 담으면서 가능한 신권으로, 한 장도 모서리가 구겨진 돈이 없도록 일일이 펴서 그것도 돈의 앞뒤가 뒤섞이지 않도록 같은 방향으로 가지런히 챙 넣었던 일을 말이다. 경리 담당자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돈을 준비할 때 일차적으로 손을 봐서 챙겨 왔지만 그대로 헤아려 담은 적이 없다. 돈에 낙서라도 있으면 신권이라도 제외시켰고, 간부직원부터 잔 심부름을 하는 아이까지 얼굴을 떠올리며 월급을 넣었다. `이 친구는 기회를 봐서 좀더 올려줘야 될 텐데` `이 친구는 뭐 하느라 가불을 이렇게 많이 했을까.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하며 월급을 봉투에 담고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글을 정성 들여 겉봉에 썼다. 그리고 한 사람씩 불러 차 한잔 나누며 한달간의 노고를 격려하고 근무를 하는데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장래 생각하는 계획을 묻기도 하면서 급여봉투를 건넸다. 결국 급여일은 직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하는 날이었다. 이 때 직원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메모를 해 뒀다가 시스템으로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바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지체하지 않고 시정했다. 그런 점에서 명륜동에 작은 사옥이나마 빨리 마련하고자 한 것도 직원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줌으로써 그들이 느끼는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한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사무실 분위기에 생기를 불어 넣었음인지는 몰라도 명륜동 사옥 시절은 그 어느 때보다 직원들은 일치단결했고 회사는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했다. 툭하면 잔업이었지만 모두 언제나 웃음 띤 얼굴로 서로를 격려했고 일이 끝나도 돌아갈 줄을 모르고 잔디밭에서 씨름을 하는가 하면 사내에 설치한 탁구대에는 언제나 왁자지껄한 웃음과 함께 탁구 게임이 벌어지곤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난 언제나 그들 옆에 있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20대중반에서 30대 초반이어서 모두 젊은이답게 깨끗하고 열정적이고 솔직해서 그들 사이 로맨스도 전성기였던 듯 명륜동 시절은 많지 않은 직원 수에 비해 유난히 사내커플이 많이 나왔다. 여기에다 함께 일했던 직원 중에는 예림당을 벤치마킹해 직접 출판사를 내는 사람도 나왔다. 그 뒤로도 사내커플은 줄을 이었고 `독립 선언`을 하고 출판을 시작해 안정적인 기반을 이룬 사람들도 꽤 있다. 직원들의 애경사에 참석하면 옛날의 얼굴들을 더러 대할 수 있는데 언뜻 들으니 전원은 아니지만 과거 예림당 사내커플 모임도 갖는다고 한다.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은 직원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건 당연한 이치다. 나는 언제나 나를 대신하는 직원들이 신이 나서 일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에 대한 자긍심도 필요하고 언제나 자발적이면서도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장님`이기보다는 `능력 있는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 여기에다 비전 있는 회사로 만들어 직원들 역시 비전을 갖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인생 설계를 펼쳐나갈 수 있는 그런 직장이 예림당이기를 바랬다. <최인철기자 miche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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