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비모스키 두산그룹 부회장, 더모트 보든 LG전자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도널드 카터 SK텔레콤 인사팀장 등등. 국내 대기업들의 외국인 경영자 영입 사례가 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들에 대한 대우와 회사 내 역할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가장 적극적으로 외국인 경영진을 영입하고 있는 곳은 LG전자. 이 회사는 최고책임자 7명 가운데 4명을 외국인으로 채워 이 분야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보든 부사장을 CMO로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올 1월에는 토머스 린턴 부사장을 최고구매책임자(CPO)로, 3월에는 디디에 슈네보 부사장을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CSCO)로 각각 스카우트했다. 최근에는 레지널드 불 부사장을 최고인사책임자(CHO)로 데려오기로 확정했다. 연봉 등 계약 내용은 극비로 다뤄지지만 업계에서는 이들이 수십억원까지 연봉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꼼꼼히 계약한 이는 린턴 부사장. 그는 평소에도 “인생은 협상”이라는 말을 즐겨 할 정도로 구매전문가다운 철학을 갖고 있어 LG전자 인사팀이 영입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미국인인 그는 “본국에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연봉의 10%는 달러로 지급해달라”고 요청해 이를 계약서 내용에 넣는 데 성공했다. 외국인 최고책임자들은 집과 차량을 제공받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 외국인 최고책임자들은 서울시내 고급 단독주택을 LG전자 측으로부터 제공받았다. 보든 부사장의 경우 부인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마디하자 회사에서 집을 옮겨줬을 정도다. 부사장들에게는 에쿠스급 승용차가 제공되지만 필요할 경우 LG전자가 보유한 의전용 차량을 쓰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다. 외국인 최고책임자들은 국내로 자리를 옮길 때 별도의 스태프들을 데려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LG전자는 이들이 해외에서 우수 인력을 직접 스카우트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든ㆍ린턴ㆍ슈네보 부사장은 LG전자에서 각각 130명, 20명, 25명 규모의 팀을 이끌고 있다. 외국인 최고책임자들의 잇단 입성은 조직문화도 상당히 바꿔놓았다. 출퇴근 시간이 규칙적인 이른바 ‘칼퇴근’이 외국계 회사처럼 자리잡고 회식도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말단직원도 직속상관을 거치지 않고 최고책임자를 직접 상대하게 됐다. 이들 부사장은 “미스터라는 호칭 말고 이름만 불러달라”고 요청하곤 한다. 물론 처음에는 업무스타일이 서로 달라 다소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LG 측 전언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영입된 한 부사장은 부서원들이 왜 자리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며 “이후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이 늘어나면서 사무실 분위기도 토론과 현장 분석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해외파’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다. 일상적인 회식 문화도 그들에게는 고역. 보든 부사장은 부임한 직후 창원공장을 방문했는데 현지 직원들의 환영의 ‘잔 돌리기’에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국내 팀원들이 유학파 등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지만 역시 완전한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점도 힘든 점이다. 무엇보다도 외국인을 경계하는 듯한 문화가 가장 큰 고민거리. 이들 해외파 임원들은 국내 직원끼리 따로 뭉치는 듯한 분위기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 부사장은 ‘로컬(localㆍ현지)’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한국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외국인 최고책임자에게는 껄끄러운 용어라는 이유에서다. 국내 간부들과의 은근한 ‘기싸움’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린턴 부사장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회사에서 20년 일한 사람과 부딪치면 승산이 없다”며 “조급증 없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가운데 내 뜻을 관철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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