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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서의 경제학

며칠 전 오전 9시. 기자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반도체관련업체 A사장이었다.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있습니까? 회사를 음해하는 투서 한 장만 믿고 정부가 중소기업을 괴롭혀도 되는 겁니까?” 이렇게 시작된 전화는 무려 한시간 남짓 이어졌다. 통화가 계속되면서 기자는 가장 바쁜 아침시간에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말을 들어야 했던 짜증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곤 A사장에 대한 동정과 안타까움이 솟구쳐 올랐다. 내용은 이렇다. 한 달 전쯤 한 통의 투서가 모 정부부처로 날아들었다. 투서에는 `A사장이 정부 정책과제를 허위로 수행하고 가짜 성과보고서를 올렸다`, `가공매출을 했고 회계를 분식했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들어 있었다. 이후 A사장은 한 달이 넘도록 온갖 자료제출에 3번의 기업실사까지 철저히 닦달을 당했다. 이러는 사이 바이어와 상담은 수 차례 연기됐고 급기야 수출납기까지 못 맞추는 사태가 벌어졌다. 더욱이 업계에서는 투서 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A사장의 명예와 기업 이미지는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 투서의 내용은 거짓이었다. 한 달여 동안 한 벤처기업의 영업과 생산을 방해하고 기업 공신력을 실추시킨 투서가 결국 음해로 드러난 것이다. 정신적ㆍ물질적 피해를 항의하는 A사장에게 정부 관계자는 “참여정부가 내부고발이나 투서를 장려하고 있지 않느냐”며 “억울하면 투서자를 찾아 소송을 하라”고 강변했단다. 그러면서 투서자가 누구인지는 절대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말을 잘랐다는 것이다. 사실에 부합하는 내부고발 등 투서가 사회정의 실현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 맞다. 정경유착과 횡령ㆍ배임 등 경제기반을 갉아먹는 비리에 대한 고발은 한마디로 생산적일 뿐 만 아니라 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인다. 반면 사실과 상관없는 투서는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비효율을 낳을 뿐이다. 따라서 조사에 앞서 투서자와 투서 내용에 대한 사전 검증작업, 즉 정확한 내사야말로 투서의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 핵심 관건이 된다. 참여정부는 이 `투서의 경제학`을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한다. 투서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지금 `투서 파퓰리즘`이 잘못된 노동정책처럼 한국경제를 망치는 또 다른 요인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규진기자(성장기업부) sk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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