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경기는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어렵다고 위축될수록 경기는 더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부자들은 소비를 더 하고 기업들은 투자를 확대해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박건현(56ㆍ사진) 신세계백화점 대표이사는 지난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발 경제위기 등으로 하반기 경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지금은 투자할 좋은 시기"라며 "앞으로 3~4년간 2조원가량을 투자해 대규모 신규 점포 3곳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IMF 외환위기 때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장을 맡고 있었는데 단기간에 매출이 반토막 나는 타격을 받았지만 1년 정도 지나면서 실적회복에 성공했다"면서 "소비를 비롯한 경기 불황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리 오래 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최근 서울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실시한 하반기 기업 경영전망 조사와도 맥을 같이 하는 얘기다. 조사 결과 기업 10곳 가운데 8곳은 지난해보다 투자규모를 확대하거나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해 이번 위기를 글로벌 시장 선점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신세계백화점이 조 단위 사업투자를 계획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현재의 위기를 도약의 터닝포인트가 될 중요한 순간으로 보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실제로 박 대표는 최근 열린 '하반기 경영전략 공감회의'에서도 "지금의 어려운 경영환경이 오히려 백화점 영업 시스템과 운영방식을 새롭게 혁신할 수 있는 기회"라며 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발상' 전략을 강조했다.
대구ㆍ하남ㆍ서울 3대 거점 구축
신세계는 3~4년 후인 오는 2015년 하반기~2016년 상반기를 목표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하남 유니온스퀘어, 동대구 복합환승센터, 서울 양재동 등에 복합쇼핑몰과 백화점을 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3개 점포를 포함해 2020년까지 신세계백화점을 17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대표는 전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쇼핑매장의 신모델을 선보이겠다며 신규 점포 개발에 상당한 의욕을 나타냈다. 그는 "하남 유니온스퀘어는 세계 유일의 콘텐츠를 넣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동대구는 복합환승센터의 대표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 대표가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강조한 이유는 백화점이라는 유통업태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1982년 신세계에 입사해 올해로 30년째 백화점 사업 부문에서 일해온 박 대표는 국내 백화점의 산 역사이자 백화점 마케팅의 최고 전문가다. 그는 지난 20년간 국내 백화점이 10년 주기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선보이며 성장해왔다고 보고 있다. 목 좋은 자리에 건물을 지어놓고 단순히 물건을 들여다 판매만 하던 백화점이 10년 뒤 해외 유명 브랜드를 수입해 글로벌한 백화점으로 품격을 높였고 또 10년 뒤에는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추가하며 도약했다는 것.
박 대표는 "일본의 백화점이 쇠퇴하게 된 것은 물건만 판매하는 20년 전 모델을 고수하며 변신 노력을 소홀히했기 때문"이라며 "혁신을 거듭해온 한국 백화점은 앞으로도 성장여력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MS가 아닌 LS 경쟁시대
앞으로는 유통시장에도 물건판매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했던 마켓2.0시대가 저물고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마켓3.0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는 시장점유율(MS) 경쟁을 많이 했지만 앞으로 백화점이 계속 성장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MS 경쟁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얼마나 가치를 주느냐 하는 LS(Life Share) 경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에게 단순히 물건만 팔고 가치를 주지 못하면 미래 성장이 불투명하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백화점들이 지난달 29일부터 한 달 동안 사상 최장의 여름 세일에 돌입한 데 대해서도 박 대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경쟁사 대응 차원에서 세일 기간을 맞춰 갈 수밖에 없지만 매출이 다소 떨어진다고 무조건 저가공세를 펴는 것보다는 백화점의 정체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라이프스타일 경쟁시대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상품과 시설 두 측면으로 나눠 설명했다.
우선 상품은 다른 백화점과 차별화된 신세계만의 새로운 상품구성(MD)을 끊임없이 선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신세계 강남점에 선보인 식품 전문매장 딘앤델루카가 대표 사례다.
박 대표는 "제일 중요한 것은 상품"이라며 "요즘은 고객들은 유행하는 브랜드와 상품 디자인을 우리보다 더 잘 안다. 이런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설 측면에서는 고객이 편안하게 쉬었다 간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 센텀시티점에 찜질방과 사우나를 운영하고 옥상에 골프연습장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센텀시티점은 물건판매 시설이 전체의 65%에 그치고 수익과 큰 상관이 없는 편의시설이 35%에 이른다. 최근 개점한 의정부점에 드럭스토어인 '분스'나 애견숍인 '몰리스펫샵'을 입점시킨 것도 비슷한 시도다.
박 대표는 "백화점에 가보면 도시의 문화나 유통시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좋은 백화점이 있다면 그 도시가 활발하다는 것이고 백화점의 생명력이 없다면 그 도시가 낙후됐다는 것"이라며 "백화점은 도시의 얼굴"이라고 강조했다.
백화점 이제는 '갑'아니다
중소 협력업체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제다.
박 대표는 판매수수료와 관련된 질문을 꺼내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마침 공정거래위원회가 3일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소기업 판매수수료를 3~7% 내리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가 임박한 상황에서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삼가려는 의도로 보였다.
재차 질문을 하자 박 대표는 "백화점이 '갑'이던 시절은 지나갔다"면서 "좋은 상품이나 브랜드는 백화점이 가서 모시고 오는 형편이 됐다"고 말했다. 백화점 입점을 요청해도 거부하는 중소업체들이 많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세계는 지난해 '파트너 행복경영'을 선언했고 '동반성장과 상생경영 3대 핵심 사항'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행사 공동 광고비를 100% 신세계백화점이 부담하고 공동 판촉행사 대 중소기업의 비용부담을 없앴다. 또 협력사의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 국내 상품 직매입 규모를 올해 2,0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상생플러스론과 동반성장펀드 등도 1,000억원 규모로 책정했다. 이 외에 신규 거래 중소기업 계약기간을 2년간 보장하고 신진 디자이너 발굴·육성 프로젝트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0월에는 공개 입점 박람회를 열고 전도유망한 중소업체를 선정해 백화점에 입점시킬 예정이다.
박 대표는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위한 다각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100%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는 없겠지만 신세계에 입점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구분 없이 최선을 다해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모범사례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박 대표이사는 '레츠 펀(Let's Fun)' 박건현 대표이사는 '펀'을 추구하는 최고경영자다. 항상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박 대표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이 편하고 만족스러운 쇼핑을 하기 위한 기초공사가 바로 직원의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고객을 대할 때 직원들이 그 한 사람을 100명의 고객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면서 "그렇게 대하면 그 고객 입장에서는 백화점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백화점은 본사 직원부터 협력사원, 파견직원, 주차 및 환경미화 직원까지 워낙 다양한 면면으로 구성돼 있어 컨트롤이 쉽지 않다. 박 대표는 직원이라는 내부 고객을 만족시켜야 외부 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평소 신념 아래 직원들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펀(fun)한' 근무환경은 광주점장이던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됐다. 월례조회에서 따분한 점장 훈시 시간을 30분에서 5분으로 단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박 대표는 "광주점장 시절에 훈시를 시작하면 졸음을 참지 못하는 직원들이 수두룩했다"면서 "그때부터 월례조회에서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공연이나 직원 장기자랑 등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주고 훈시는 짧게 줄였다"고 설명했다. 월례조회 시간에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낭송하고 마친 적도 있다. 직원들이 고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해줬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박 대표의 월례조회 방식은 현재 신세계백화점 전국 점포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박 대표는 실적압박으로 풀이 죽은 직원들의 기를 살리는 데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는 직원들에게 실적목표에 끌려가지 말고 '멋지게' 조직을 끌고 가라고 주문한다. 박 대표는 "100이 아니라 95를 해도 멋지게 한다고 생각하고 하면 새로운 전략이 나오고 해법이 따라온다"면서 "목표달성에 실패한다고 해도 멋지게 해보고 실패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경기점과 본점에 이어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센텀시티점 등 신규 점포의 점장을 잇따라 맡으며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신세계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1982년 신세계에 입사해 백화점과 인연은 맺은 지 올해로 30년이 됐으며 2009년 대표이사로 취임해 신세계백화점을 이끌어오고 있다. /조성진기자 ◇약력 ▦1956년 경북 경산 ▦1974년 대구 계성고 졸업 ▦1982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1982년 삼성그룹 입사 ▦1987년 신세계 관리부 과장 ▦1995년 전략기획실 운영팀장 ▦1997년 영등포점장 ▦1998년 마케팅실장 ▦2000년 광주신세계 점장(상무) ▦2006년 경기점장(12월 부사장승진) ▦2007년 본점장(부사장) ▦2008년 센텀시티점장(부사장) ▦2009년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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