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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어디로 가나] 더블딥을 넘어 장기불황
입력2004-12-03 09:27:41
수정
2004.12.03 09:27:41
소비,투자 침체 환란 때보다 더 심각..전망도 비관적경기악순환
국내 경기가 본격적인 하강국면에 접어들면서 더블딥(경기 이중하강) 논란을 넘어 장기불황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한때 희망섞인 분석이었던 소프트패치(경기 상승국면에서의 일시적 하강) 가능성은 사라진지 오래다.
내수부진이 장기화되고 우리 경제의 성장을 지탱해온 수출증가세도 꺾이는 가운데 기업들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꺼리고 있어 경기복원력이 사라졌다는 극단적인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연초부터 쏟아진 각종 경기대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데다 잇단 국내외 변수로인해 회복은 커녕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지자 결국 정부도 올해 5% 성장을 사실상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증권가에 나돌고 있는 '한국경제호(號)의 향후 항로는 일본을 거쳐 남미로갈 것이냐 아니면 남미로 바로 향할 것이냐는 선택만 남아있다'는 말을 호사가들의수다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때문이다.
◆경제지표 '더이상 나쁠 수 없다'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당시에 못지않게 심각한 상황임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달보다 5.7% 늘어나는데 그쳐 9개월만에 가장 낮은 증가폭을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표업종인 반도체와 자동차부문에서도 증가폭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탓에 결국 10월 수출은 최근 8개월이나 계속된 20% 증가율을 마감했다.
같은 달 도.소매 판매도 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으며 소비자 경기평가지수도 53.5로 환란직후인 98년 11월 65.9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나 최악의 체감경기를 반영했다.
중소기업 가동률은 21개월째 60%대에 머물고 있다.
생산, 수출, 소비 등 모든 산업활동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현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증가율이 7개월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경기하강 국면이 본격화됐음을 보여줬다.
심지어 불경기로 취업이 어려워지고 부동산 경기도 위축되면서 이사도 줄어 지난 3.4분기 전국 인구이동률도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경기악순환 가시화..투자,소비 비관론 우세
향후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다 보니 기업들이 좀처럼 투자에 나서지 않고 국민들은 지갑을 열지 않아 경기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잇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두차례 전격적으로 콜금리를 인했으나 기업대출은 오히려 줄어들어 투자위축-소득감소-소비감소-투자위축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더욱이 기업 설비투자는 내년에 더 둔화될 것으로 전망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2천800여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1일 발표한 조사결과에따르면 내년 설비투자 규모는 올해보다 9.1% 늘어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올해 추정치인 31.2% 증가에 비해 크게 둔화된 것이다.
아울러 재계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확대되면서외국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주가와 배당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이 이뤄지는데다 경영권 방어에 신경을 쓰다보니 투자여력이 없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을완화해주는 것 등 규제완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2.4분기부터 올 3.4분기까지 무려 6분기에 걸쳐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소비도 당장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윤기 박사는 "가계의 신용조정이 상당히 진행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계빚의 규모는 470조원에 달한다"며 "국내외 여건상 소비회복은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다 가계자산의 80% 정도가 부동산에 묶여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억제정책이 시행되면서 거래가 얼어붙어 소비심리는 물론 주택건설 경기를 위축시켜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는 다시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올초부터 건설경기 연착륙 대책, 서비스산업 활성화 대책, 일자리창출종합대책 등 각종 경기대책을 내놓았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여기에 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성장잠재력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급기야 내년부터 대규모 종합투자계획을 추진하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으나 '약발'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이 계획의 내용이 미래의 소득을 보장하는 장기적인 경제의 체질개선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가나
최근 증권가에는 '한국경제호(號)의 향후 항로는 일본을 거쳐 남미로 갈 것이냐아니면 남미로 바로 향할 것이냐는 선택만 남아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기회복이 지난 2.4분기 5.5% 성장을 정점으로 3.4분기에 4.6%로 주저 앉았고 4.4분기는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2분기 연속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문자그대로 '침체(Recession)'국면으로 일반적인경기순환주기보다 훨씬 짧은 불과 1년만에 다시 하강국면에 접어들어 이른바 더블딥이 현실화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원도 우리나라 경제가 전형적인 하강국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우리 경제가 지난해 보여줬던 일시적인 상승이 본격적인회복기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더블딥이 아니라 'L'자형의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내년에도 우리 경제는 소비나 투자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3∼4%대 심지어 2%대까지로 추산되는 저성장이 예상돼 본격적인 장기불황의 터널에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최근의 상황으로 미뤄 우리 경제가 과거 일본이나 남미가 겪었던 장기불황을 답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우리 경제상황과 90년대초 일본의 장기불황 초기와는 여러 측면에서 닮아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지출과 설비투자가 떨어지고 부동산투기 억제책으로 인해 건설경기가 급격히 냉각됐다는 점에서 거의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제조업 공동화, 저금리에 수반한 경기침체, 거시경제정책의 효과 부족이 10여년의 시차를 두고 흡사하며 불황의 근본원인이 불확실성에 근거한 심리적인 요인이라는 점에서도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일본식 혹은 남미식 경기침체 가능성은 대단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히는 등 정부관계자들은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으나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또 당정간 불협화음, 부처간 이해대립으로 정책을 내놓아도 삐걱거리기 일쑤이고 참여정부 출범이후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지루한 논쟁도 국민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불확실성 해소 주문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지갑을 닫게 하고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원인을 정책의 불확실성에서 찾고 있다.
또 우리 경제가 시장경쟁을 통한 효율성을 높이기 보다는 평등과 분배에 너무신경을 쓴 결과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배상근 박사는 "정책의 불확실성 심화로 인한 심리적인 요인이 최근 경기부진의 요인"이라며 "경제주체들이 경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정부와여당이 만들고 있다"고 힐난했다.
그는 "정부가 현재와 미래의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한뒤 국민들에게 확신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연구원(KDI)의 신석하 박사는 현 경제상황에 대해 "국민연금 등 준조세에 대한 부담, 금리하락에 따른 미래소득 불안 등으로 인해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데다 기업들이 투자기회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에 따라 성장잠재력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분석했다.
신 박사는 따라서 "경제시스템을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보다는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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