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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또 다른 속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보석같은 풍광 월정해변… '바다위의 샘' 청굴물에선

바위틈 고망낚시 손맛 짜릿

청굴물은 바다에서 솟구치는 샘물로 온도가 낮아 들어가 앉아 있으면 5분을 견디기 힘들어 여름철 밭일을 끝낸 주민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제주의 전통 등대인 김녕의 도대불은 상자모양이었으나 1960년 불어닥친 태풍으로 허물어져 이듬해 원뿔 모양으로 다시 축조됐다.

진빌레 숲 앞에 펼쳐진 밭. 이 밭들은 원래 용암이 굳어 형성된 바위였지만 주민들이 암반을 부숴 만든 흙으로 조성한 피와 땀의 결정체다.

마을·바닷가길 어우러진 14.6㎞… 용암동굴·전통 등대 등 두루 구경

에메랄드빛 월정해변 노천 카페서 향긋한 커피 마시며 가을 정취 만끽


이번에는 바닷가, 그것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던 제주 김녕·월정에 길이 났다.

이름하여 '제주 지질트레일'이다. 기존의 올레길·둘레길·유배길에 이어 제주의 또 다른 민낯을 볼 수 있는 길이다. 김녕과 월정은 모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속한 마을이다. 이 두 마을에 지질트레일이라는 다소 학술적인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만장굴 지역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김녕과 월정 두 지역 아래로는 김녕굴·용천동굴·당처물동굴 등 거문오름용암동굴계에 속하는 용암동굴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이 지질트레일 코스는 총 14.6㎞. 마을을 걷는 길과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뭍을 따라 걷는 9㎞ 코스를 드르빌레길, 바다를 따라 걷는 5㎞를 바당빌레길이라고 부른다. 제주사투리 '드르'는 들을, '바당'은 바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4시간의 짧은 완상(玩賞)으로 제주의 바다와 표피, 그리고 땅속까지 두루 구경할 수 있는 '새 길'을 걸어보았다.

◇시작하는 곳=제주 지질트레일은 김녕어울림센터에서 시작한다. 제주에서는 포구를 방언으로 '개'라고 부른다. 1601년 안무어사로 제주에 왔던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김녕포에는 병선도 감출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김녕포구는 규모가 컸다. 방파제가 설치되고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큰 포구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육지로 깊숙이 파고 들어온 바다 모양에서 번성했던 옛모습을 미뤄 유추할 수 있다. 지질트레일은 이곳 안쪽에 위치한 김녕어울림센터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바로 시작된다.

지질트레일 코스 중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제주식 등대 '도대불'이다. 도대불은 포구마다 하나씩 있는데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김녕의 도대불은 상자 모양이었으나 1960년 불어닥친 태풍으로 허물어져 이듬해 원뿔 모양으로 다시 축조됐다. 등대의 규모는 높이 3m, 상단폭1.2m, 하단폭 3.3m에 이른다.

도대불의 연료는 생선기름이나 송진이 엉긴 소나무옹이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연료는 석유로 바뀌었고 그나마 1972년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도대불은 그 임무를 현대식 등대에 넘겨주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청굴물=청굴물은 바다에서 솟구치는 샘물이다. 청굴물은 온도가 낮아 샘 속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5분을 견디기 힘들어 밭일을 끝낸 주민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여름에는 먼 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찾아와 물맞이를 즐겼다고 한다. 청굴물에는 바다에서 즐기는 민물 미역감기에 더해 또 한 가지 즐거움이 있다. 이름하여 '보들레기 고망낚시'다. '보들레기'는 베도라치라는 물고기의 방언이고 '고망'은 구멍의 사투리다. 표준어로 말하면 베도라치 낚시인 셈이다. '보들레기 고망낚시'는 1m쯤 되는 철사 끝에 낚싯줄을 묶어 청굴물 근처의 바위틈에 넣으면 베도라치가 미끼를 물고 올라온다. 지금도 마을주민의 도움을 얻어 낚시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청굴물의 수원(水源)은 마을 안쪽으로 250m 떨어진 '게웃샘물'과도 이어져 있다. 게웃샘물은 마을 한복판에 수직으로 난 동굴에서 솟는 샘물로 이 수맥이 바다에서 샘솟는 지점이 청굴물인 셈이다.

◇진빌레=시작점에 6.9㎞가 떨어진 곳에는 '진빌레'라고 불리는 숲이 있다. 진빌레의 '진'은 '길다'라는 의미고 빌레는 '평퍼짐한 암반'이라는 의미다. 숲이라고는 하지만 겨우 어른 허리높이에 불과한 덩굴과 잡초들이 성겨 있을 뿐이며 바닥은 용암이 흐르다 굳어 형성된 넓적한 바위들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이 제주 주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이 같은 환경 때문이었다. 온통 바위로 된 척박한 땅에서는 농사짓기가 만만치 않아 대부분 반농반어(半農半漁)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거친 환경과 맞선 주민들의 도전은 간단없이 이어졌다. 암반을 부숴 흙으로 만든 끝에 몇 뙈기 안되던 밭은 조금씩 면적이 넓어졌다. 제주 지질트레일이 개통한 지금, 진빌레 구역은 척박한 돌밭을 일구던 농부들 대신 외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의 알록달록한 등산복으로 뒤덮이고 있다.

◇월정해변=출발점에서 9.2㎞ 떨어진 월정해변에는 카페거리가 조성돼 있다. 크고 넓은 모래밭이라는 의미의 '한모살'이라는 제주방언으로 불리던 이곳은 몇 해 전 만 해도 한적한 해변이었다. 하지만 시나브로 서울이주민과 지역주민 등이 몰려들면서 카페가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해 지금은 아예 카페촌을 이루고 있다.

월정해변이라는 보석 같은 풍광을 마주한 카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천에 테이블을 내어놓고 손님을 맞고 있다. 이곳에서 차를 마시면 바다와 나그네는 그저 물아일체의 지경으로 몰입하면서 자신이 바람인지, 아니면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별유천지의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다. /김녕=글·사진 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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