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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澗松 全鎣弼ㆍ1906~1962)과 겸재(謙齋 鄭敾ㆍ1676~1759)의 만남은 숙명이었고 나와 겸재의 만남도 운명이었습니다. 겸재를 연구한 지난 40년은 한마디로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겸재 연구의 권위자인 최완수(67)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이 40년 겸재 연구를 일단락하는 저서 '겸재 정선'(현암사 펴냄)을 펴냈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박물관을 거쳐 1966년부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으로 있는 그는, 반평생을 겸재 관련 연구에 바쳤다. 그 세월과 노력을 증명하듯 본문만 200자 원고지 3,673 분량에 이르고, 겸재의 대표작 대부분을 총망라한 도판 206장과 참고그림 147장이 들어갔다. "글을 쓰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고 교정을 18번이나 봤으니 편집자가 깨나 힘들었을 겁니다. '팔만대장경'의 위대함에는 오탈자(誤脫字)가 적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보고 또 봐도 부족할 리 있겠습니까." 타고난 세심한 성격과 학자로서의 철두철미함을 드러내는 말이다. "연구는 끝이 없지만 마침 올해 겸재 서거 250주년을 맞아 작심하고 일단 마무리 지었습니다. 과거에 냈던 겸재 관련 책은 작품을 주제별로 나눴었지만 이 책은 편년체 형식으로 일목요연하게 겸재의 그림을 볼 수 있으니, 그 화풍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남은 것은 이제 낙수(落穗ㆍ뒷이야기) 정도죠."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겸재 그림들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한 최 실장은 겸재 그림 자체에 대한 분석 외에도 가계도와 가정형편, 교우관계, 학맥, 시기별로 사용한 도장까지 소개하는 등 당시의 정치ㆍ경제ㆍ사회 상황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왜 겸재였나'라는 질문에 그는 "일본 강점기 근대사학의 영향인 조선문화가 형편없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려면 조선왕조 문화사의 절정기인 진경시대와 그 핵심인물인 겸재를 보여줘야 했다"면서 "주역과 성리학에 능통했던 겸재는 중국 고사를 그리면서도 등장인물은 갓 쓰고 도포 입은 우리네 모습을 그대로 그렸고, 이는 풍속화의 시조가 다름아닌 겸재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최 실장은 "진경시대에 대한 연구로 조선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언젠가는 이 책도 외국어로 번역해야할 것"이라며 "앞으로는 추사(秋史 金正喜ㆍ1786~1856)에 대한 연구, 왕릉 연구의 마무리가 남았다"고 밝혔다. 전 3권 3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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