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의 감독.'
곽경택(49·사진) 감독에게 근 14년째 따라붙는 수식어다. 지난 1970~1980년대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낸 영화 '친구(2001)'는 개봉 당시 800만명이라는 엄청난 관객을 끌어들였다. 단순한 흥행을 넘어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불렸던 이 영화로 당시 만 서른네 살의 젊은 감독은 더없는 성공과 행복을 누렸음이 틀림없다. 문제는 이후다. 곽 감독은 이후로도 '챔피언' '똥개' '태풍' '사랑' 등 화제작들을 쉼 없이 선보였지만 어느 하나 '친구'를 넘어서지 못했다. 너무 대단한 작품이 그의 감독 인생 초기에 나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독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저는 분명히 '친구'의 감독이에요. 평생."
곽 감독은 너무도 담담하게 답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더 많은 작품을 만들고 더 훌륭한 작품을 찍는다고 해도, 그래도 계속 '친구' 감독으로 불려도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친구'가 개봉한 다음 날인가, 충무로에서 영화계 어르신 한 분을 만났어요. 근데 그분이 대뜸 하시는 말씀이 '축하해요. 이제 곽 감독은 평생 '친구'의 감독으로 남을 겁니다'였어요. 그때는 저도 혈기 왕성할 때라 조금 황당했습니다. 내가 끝났다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그분이 설명하시길 '나는 *마부(1961)라는 영화를 할 때 제작부장이었고 평생 마부의 제작부장으로 살았다'는 겁니다. 그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진하게 들리네요. 그건 굉장히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나는 이야기꾼, 내 영화의 중심은 드라마"="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시길 '재밌는 영화는 내가 안 보고 본 사람이 와서 얘기만 해줘도 재밌다'고 합니다."
곽 감독은 그렇게 '얘기만 들어도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다. 1997년 '억수탕'으로 데뷔해 18년간 무려 12편의 영화를 만들어낼 정도로 왕성한 생산력을 보였음에도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넘친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버지가 쓴 '우암동 189번지'라는 작품이다. 그는 "1950년대 부산에 살던 피란민들에 관한 에로틱 무비"라며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었는데 캐스팅도 어렵고 미술 등 제작비가 만만찮아 계속 미뤄지고 있다"고 했다.
영화의 소재는 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얻는다. 18일 개봉하는 '극비수사' 또한 영화 '친구2'의 시나리오 집필 중 우연히 만난 공길용 형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곽 감독은 "37년 전 유괴사건에서 실제 공을 세운 인물들이 그 사건 해결에 대한 보상을 다 빼앗기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저 가족들을 위해 애만 찾아주면 됐던 것이다'라고 털어놓는 모습이 굉장히 감동적이었다"며 "사실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겠다 여겼다"고 설명했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 소재를 찾다 보니 곽 감독이 남자들의 이야기나 과거의 이야기에만 얽매인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누면 현재나 미래 이야기보다는 옛날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형님, 제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라고 시작되는 얘기가 귀에 확 들어오는데, 그러다 보니 과거형이 될 수밖에요. 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은 아무래도 동성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제 영화에 여성이 적다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이야기꾼'의 면모는 그가 영화를, 이야기를 다루는 태도에서도 나온다. 곽 감독은 연출한 영화 대부분을 직접 각본했다. 그는 "재미있는 원작을 마다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욕심이 있다"며 "내가 발굴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해줄 때 더 고맙고 기쁘다"고 했다.
◇현장에서 쾌감을 느끼는 천생 영화 감독=하지만 감독이 영화 제작 과정 중 가장 쾌감을 느끼는 곳은 역시 현장이다. 글로만 써서 머릿속에만 있던 그림이 눈앞에서 열리는 그 느낌.
"촬영을 위한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후 액션 사인을 내릴 때, 연기자가 적재적소에 투입됐는데 그 연기와 에너지가 너무 좋고 때마침 보조출연자도 타이밍 좋게 딱 지나가고 그러면, 그 순간은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아서 속된 말로 돌아버리죠. 영화는 그 맛에 합니다."
이번 영화 '극비수사'에서 곽 감독이 꼽는 최고의 장면 역시 김윤석·유해진 두 연기 고수의 에너지가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아파트 복도 신이다. 이 장면은 약간은 서로 겉돌던 두 중심인물의 마음이 비로소 완벽히 하나가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어 영화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감독은 "이런 신은 카메라 테크닉도 별로 없이 인물들의 부딪침으로 가는 것"이라며 "연기자가 에너지의 100%를 뽑아낼 수 있도록 준비가 완벽하고 연기자 또한 최고로 몰입했을 때야 나올 수 있는 장면"이라고 만족해했다.
이번 영화는 곽 감독이 18년간 다져온 그의 작업 스타일을 변화시키려 한 첫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이번 영화의 편집을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점. 곽 감독은 기존 작품 대부분에서 편집에 적극 관여했지만 이번에는 영화 '끝까지 간다' 등에서 실력을 보인 김창주 편집감독에 전권을 넘겼다. 관객들이 영화 '극비수사'에서 감독의 전작과 사뭇 다른 점을 발견했다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말하길 '너는 그 농업적 근면성을 버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땅 파는 것부터 작물 일구는 것까지 혼자서 열심히 다하지 말고 요령 좋게 하라는 겁니다. 저도 지금껏 고집했던 작업 방식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해요. 한 작품을 생산하는데 좋은 스태프들과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면 훨씬 더 많은 박수도 받을 것이고 에너지도 절약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게 변화를 준 이번 작업 방식이 곽 감독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영화를 앞서 본 관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심상찮다. 이번에야말로 '친구'를 뛰어넘고 싶지는 않을까. 감독은 담담히 답했다.
"때로는 제 전작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죠. 하지만 '친구'는 영화가 아니라 현상이었어요. 제가 영화를 잘 만들 수는 있어도 사회적 현상을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죠. 물론 흥행은 욕심나지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결과는 운명에 따름)'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죠."
*마부=강대진 감독의 1961년 흑백영화. 벙어리 큰딸과 고시 공부를 하는 큰아들, 결혼으로 출세하려는 셋째딸, 말썽만 일으키는 작은아들 등 4남매를 둔 마부 김승호의 이야기. 당시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뒀고 제11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 역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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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