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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봄… 그리고 스크린여행
입력2003-04-01 00:00:00
수정
2003.04.01 00:00:00
박연우 기자
이라크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전망이 높아지면서 미영 연합군폭격장면이 국내 TV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면서 이라크인들의 오열과 분노등이 화면을 가득 메우기도 한다. 광기의 이라크전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 봄이다. 그러나 전쟁은 멀리 중동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서 크고 작은 모습으로 수없이 치러지고 그 안에서 가족애 등의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마당이 마련된다.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서울여성영화제(11~18일)와 전주국제영화제(25~5월4일)가 그것이다. 봄철 관객과 만나는 굵직한 영화제로 영화제 특유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만날 수 있다. 각기 어떤 작품들이 소개되는지 살펴본다.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박경희감독의 장편데뷔작이자 임순례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은 `미소`를 개막작으로 시작되는 서울여성영화제 상영작에서 올해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젊은 여성영화인들의 활발한 활동과 영상으로 표현된 도전적이고 젊은 에너지다. 이들의 영화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섹션속에서 40편 가까이 보여진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서 첫선을 보였던 바바라 토이펠 감독의 `베를린의 여걸들`은 젊은 에너지가 넘친다. 1980년대 말 세계화의 압력에 맞서 거리에서 저항했던 젊은 여성 아나키스트 공동체의 역사를 담은 작품. 실존인물의 회고와 극적 재연이 역동적으로 교차된다. 야우칭 감독은 장편데뷔작 `애정성시`에서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을 끌어 들여 여성들의 애정과 욕망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홍콩의 내면을 그려낸다.
뉴욕의 밤 표정을 바꾸는 클럽에서도 여성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스위스 출신의 가브리엘 바우어감독은 남장여성들의 공연인 드랙 킹이 진행되는 현장을 찾았다. `비너스 보이즈`는 이들 여성들이 보고 느끼는 남성의 이미지를 가차 없이 드러낸다. 여성속의 남성, 남성 속의 여성을 끄집어냄으로써 성차의 이데올로기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통쾌하다. 몸에 대한 기억을 계기로 사랑과 믿음, 성공과 행복의 함수관계를 탐색하는 도리스 되리 감독의 새영화 `벌거숭이 게임`, 하늘을 나는 여성의 눈으로 여성들의 하루를 바라본 레이첼 더글라스감독의 `축복`도 이러한 젊은 영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모녀관계와 가족에 대한 관심도 새롭게 조명된다. 이탈리아의 모니카 스탬브리니감독은 `가솔린`이라는 제목만큼이나 폭발력을 지닌 레즈비언 스릴러를 내놓았다. `모친살해`라는 도발적인 소재를 통해 모녀간의 깊은 애증관계를 다각도로 천착한다. 빅토리아시대를 배경으로 판타스틱 시대극`결혼의 방식`은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관습에 맞서 여성이 자율권을 획득하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고 소중한가를 일깨운다.
여성영화제는 7개 부문 19개국 120여편이 동숭아트센터 동숭활, 하이퍼텍 나다,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공연장에서 열린다. 이밖에도 `아시아 영상 미디어 교육:젠더와 민주주의, 그리고 여성주의 미디어 컨텐츠 개발`의 국제 포럼과 부대행사가 열린다.
■2003 전주국제영화제 지난달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병록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전주영화제가 마니아 중심으로 흘렀다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성과 실험성,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을 선정했다”면서 “남아프리카와 브라질, 멕시코 등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폭넓은 영화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모토는 `자유, 독립, 소통`. 전주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다시 고사동 영화의 거리로 메인 상영관을 옮긴 전주영화제는 좀더 많은 관객과 자유롭게 만나는 영화제를 목표로 삼고 있다.
30여개국 170여편의 상영작을 낼 전주영화제 개막작은 박광수, 박진표, 박찬욱, 여균동, 임순례, 정재은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의 시선`이다. 인권을 ㅈ제로 여섯명의 감독이 단편을 만든 이 프로젝트에 이어 열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할 폐막작은 `파 프롬 헤븐`. `벨벳 골드마인`의 토드 헤인즈가 연출한 이 영화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혼란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경쟁부문인 `아시아 독립영화 포럼`은 작품수를 줄인 대신 젊은 작가 위주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앙아시아까지 그 파장을 확대했다. 민병훈 감독과 `벌이 날다`를 공동 연출한 타지키스탄 감독 잠셋 우스마노프의 `오른쪽 어깨 위의 천사`, `원더풀 라이프`의 조연 이세야 유스케의 연출작 `카쿠토`가 찾아온다. 어일선 감독의 `플라스틱 트리`는 이 부문의 유일한 한국영화다. 또 하나의 경쟁부문인 `디지털 스펙트럼`은 전주영화제가 1회때부터 고집해온 대안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키즈`의 콤비 래리 클락과 하모니 코린이 다시 만난 `켄파크`와 기타노 다케시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아사쿠사 키드`가 눈에 띈다.
`시네마스케이프`부문에서는 이란 이혼여성의 문제를 10가지 시퀀스로 직시하는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텐`, 카를로스 사우라가 성경의 이야기를 각색한 `살로메`, 리오의 빈민가 소년들을 캐스팅해 만든 칸 영화제 초청작 `시티 오브 갓`이 현재 영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올해 신설된 부문이 있다. `필름메이커스 포럼`이 그것으로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동원되는 구성원들(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감독, 촬영기사, 조명기사, 배우, 편집기사, 작곡가등)의 지속적인 영화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고유한 개성, 경험을 만나는 자리. 올해는 감독편으로 상업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가는 홍콩의 닝잉 감독과 프랑스의 로랑스 페레이라 바르보사. 이들의 작품 상영후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다.
<박연우기자 y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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