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에서 쇼티지(shortageㆍ공급부족)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가격은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르는 게 일반적인 현상인 데 반도체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법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요즘도 밀려 드는 주문에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공급부족 현상이 현재 더 심화되고 있다"며 "10개 가량 주문이 오면 이 중 6~7개 정도만 제 시간에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경우 공장을 100% 풀가동 하고 있지만 주문량을 맞추는 데 많은 애를 먹고 있다. 쇼티지 현상은 최소한 올해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애플, MS 등 해외 주요 거래처 고위 구매 담당 임원들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을 직접 방문, 물량을 입도선매 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쇼티지 현상 지속은 2분기 반도체 실적에도 반영됐다. 증권가 전망치에 의하면 2분기 반도체 영업이익이 삼성전자는 2조5,000억원에서 2조8,000억원으로 전망된다. 하이닉스도 최근 실적 발표에서 분기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공급부족과 달리 가격은 하반기 들어 안정화 추세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기관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반도체 DDR2 고정거래가는 올 1월 상반기 2.38달러에서 5월 상반기 2.50달러를 기록하더니 6월 하반기에는 2.38달러로 하락했다. DDR3 고정거래가 역시 1월 상반기 2.38달러에서 5월 상반기 2.72 달러로 상승했지만 6월 하반기에는 2.63달러로 떨어졌다. 수요와 공급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공급자(삼성전자나 하이닉스반도체)와 수요자(애플, MS) 등이 현 가격대를 적정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나 MS 등은 반도체 가격이 더 오르면 완제품 가격 상승 요인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추가 가격 인상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반도체 역시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가격을 올리면 공급자들이 물량을 줄일 수 있다. 또 애플 등 거래처들이 고가의 제품 대신 싼 제품 구매로 방향을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가격이라는 게 세트 가격 등 여러 상황을 고려 결정되는 데 현재의 가격이 공급자나 수요자가 서로 용인할 수 있는 최적의 가격대 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며 "이렇다 보니 쇼티지 현상이 지속 되도 가격은 안정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울러 쇼티지 현상 속에서 가격 안정화는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지속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이면에는 반도체 회복기를 틈타 다른 해외 경쟁업체들이 추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도 담겨있다. 최고의 기술력과 공급력을 갖추고 있는 국내 반도체업계는 현재의 가격대에서도 적잖은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뒤처진 해외 반도체 업체들은 현 수준에서 낼 수 있는 이익이 적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그만큼 가격이 오를수록 해외 경쟁업체들이 유리해 진다는 점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