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공학과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기술의 발달로 국내에도 의료용 수술로봇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로봇이 지닌 특유의 정밀성과 정교함ㆍ안정성을 바탕으로 수술과 재활ㆍ진단ㆍ치료 등의 분야에서 쓰임새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소 침습 수술을 위한 수술로봇의 채용이 활발하다. 이런 점에서 주목을 받는 연구팀이 권동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래의료로봇연구단 교수팀이다. 권 교수팀은 오는 2018년 1,000억달러로 예상되는 전 세계 수술로봇 시장 공략을 목표로 현존 최강 수술로봇으로 꼽히는 미국 '다빈치'를 위협할 국산 수술로봇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정밀한 시술이 가능한 로봇 수술이 보편화되고 있다. 지난 2005년 국내에 처음 도입돼 25건의 수술이 이뤄진 이래 매년 건수가 늘어나면서 각종 암은 물론 흉부외과ㆍ이비인후과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수술로봇 시장이 올해 약 300억달러를 형성하며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진입하고 2018년에는 1,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로봇 수술의 최대 장점은 정확성과 안정성이다. 사람은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조금씩 글자의 모양이 바뀌지만 로봇은 100만번을 반복해도 항상 동일한 글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수술로봇도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항상 최고의 정밀도를 발휘할 수 있다. 로봇을 활용하면 인간의 손기술로는 불가능한 미세한 절단이나 봉합도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다.
또 기본적으로 최소 침습 수술을 지향하기 때문에 기존의 개복 수술에 비해 환자의 흉터가 적고 회복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환부에 구멍을 뚫은 뒤 수술 도구와 영상 카메라를 넣고 모니터를 보면서 원격 조작하는 방식이어서 수술의 성공률도 매우 높다. 실제 한 해외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숙련된 의사가 행하는 수술의 재발률은 20%에 육박하는 반면 수술로봇의 재발률은 1%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권 교수는 "환자의 복부를 절개해야만 했던 수술의 대부분이 지금은 내시경 수술로 대체됐듯 내시경 수술 또한 앞으로 로봇 수술로 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존하는 수술로봇의 대표주자는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위(胃) 복강경 수술로봇 다빈치(da Vinci)다. 환자의 몸에 4개의 구멍을 뚫은 다음 초소형 카메라가 촬영한 실시간 3차원 영상을 모니터로 확인하며 4개의 로봇 팔을 조종해 수술이 이뤄진다. 각각의 로봇 팔에는 손가락처럼 생긴 초소형 핀셋이 의사들의 손끝 움직임을 정확히 재현해내는데 개복 수술이나 내시경 수술 대비 회복 기간과 후유증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다빈치는 대당 가격이 무려 60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다. 소모품의 가격도 매우 만만치 않으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비싼 편이다. 권 교수에 의하면 일반적인 로봇 수술 비용은 1,000만~2,000만원대이며 전립선 암 수술은 1,500만원 수준이다.
권 교수는 "수술로봇의 가격을 5억원대로 낮춘다면 대형병원뿐만 아니라 중소병원에도 도입돼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서 "세계 각국에서 신기술 개발과 기술 고도화가 추진되는 만큼 앞으로는 의사의 눈과 손을 능가하는 수술로봇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팀은 세계 수술로봇 시장 공략을 목표로 다빈치를 위협할 국산 수술로봇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권 교수팀이 주력하는 분야는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 즉 싱글포트(single port)용 수술로봇과 무흉터 내시경 수술인 노츠(NOTES) 수술로봇 등 2종이다.
이 가운데 싱글포트 수술 로봇은 시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경북대 의대와 함께 최소 침습 수술법에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권 교수는 "다빈치를 포함한 기존의 복강경 로봇 수술은 구멍을 4개 뚫어야 하지만 싱글포트 수술로봇은 작은 구멍 하나로 모든 수술을 완료할 수 있다"면서 "로봇 팔을 단 하나만 사용하는 만큼 손목만 구동되는 다빈치와 달리 내부에 여러 개의 관절을 채용해 자유롭게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싱글포트 수술로봇의 제작 비용은 대당 5억원 정도로 상용화를 위한 기본적인 경제성은 확보된 상태다.
노츠 수술로봇은 사람이 갖고 있는 자연적인 구멍에 내시경과 수술 도구를 삽입하는 수술법으로 체내에서 장기에 구멍을 뚫어서 수술이 진행되므로 환자의 몸 외부에는 그 어떤 물리적 상처도 남지 않는 일명 무침습 수술에 속한다.
세균 감염이나 부작용ㆍ합병증의 위험이 월등히 적은 데다 회복 속도 역시 최소 침습 수술보다 빠르다. 그러나 수술법이 매우 어렵고 수술 도구의 초소형화가 선행돼야 하는 탓에 아직은 상용화에 도달하려면 많은 난관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연구팀이 표방하고 있는 노츠 수술로봇은 로봇을 제어하는 마스터 제어기와 수술 도구,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로봇 팔, 그리고 내시경과 실시간 내비게이터로 구성된다. 워낙 다각적인 로봇 기술이 융합돼야 하는 터라 KAIST에서만 4곳의 연구팀이 참여해 3명의 전문의와 공동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현재 로봇 팔과 영상 인식 시스템 등 대다수 요소 기술 개발이 완료된 상태로 지난해 두 차례의 동물실험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동물 실험을 성공리에 완료했다. 사냥개로 유명한 비글의 담낭 제거 수술을 노츠 수술로봇으로 수행한 것. 연구팀은 1ㆍ2차 동물실험에서 발견된 수술도구의 힘이 부족했던 문제를 3차 실험에서는 완벽히 보완해냈다. 노츠 수술로봇의 상용화 가능성이 얼마간 입증된 셈이다.
권 교수는 "노츠 수술로봇은 굵기가 작고 자유롭게 구동이 가능해 복잡한 장애물이 있어도 정확하게 환부를 찾아갈 수 있다"면서 "아직까지 수술 도구의 크기가 22㎜로 큰 편이어서 앞으로는 수술도구와 로봇의 소형화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그동안 확보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을 설립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거쳐 상용화 가능성을 높인 후 대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2단계 상용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프로토타입 제작에 1년, 성능 개선에 2년, 임상실험 2년 등 5년 안에 본격적인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