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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골프] 전상돈 ㈜더스포츠 사장

필자는 90년 영국 웨일즈의 카디프 저널리즘대학원에서 연수를 하면서 골프에 입문했다. 하루 4시간 정도의 수업이 끝나면 거의 매일 오후 동네 골프장으로 향했다. 저녁에는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그날의 샷을 반성했다. 틈틈이 전문 서적이나 골프관련 잡지를 뒤적이면서 이론을 무장했고 당대 최고의 골퍼였던 닉 팔도나 같은 동네(웨일즈)출신의 `작은 거인` 이언 우스남의 스윙을 비디오로 수없이 관찰했다. 그리고 한달여만에 89타를 기록했다. 순식간 100과 90대의 장벽을 돌파한 것이다. 골프의 묘미와 애환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아예 골프일지를 만들어 퍼팅 수와 파온률 등을 기록하면서 고민했고 6개월 보름이 지나자 꿈의 스코어인 79타를 손에 쥐게 됐다. 이후 1년 여를 골프와의 전쟁을 치르듯이 용맹 정진한 끝에 `핸디캡 6`의 클럽 인증서를 품에 안은 채 귀국했고언론 무림의 신흥맹주로 군림하게 됐다. 그러나 정작 골프와의 전쟁은 귀국이후 부터 본격화했다. 국내에서는 1주일에 한번정도의 라운드도 어려웠다. 실전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70대 타수를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대안은 연습장밖에 없었다. 출근시간만 있고 퇴근시간이 없는 기자의 직업특성상 연습은 출근 전에야 가능했다. 동네 연습장에 새벽 5시 반에 나갔다. 항상 1등이었다. 출장기간을 제외하곤 365일 가운데 300여 일은 연습했다. 연습장 주인은 아예 출입문 예비 열쇠를 맡겼다. 매일 새벽 시끄럽게 문 두드리지 말고 조용히 들어오고 아예 전등까지 켜달라는 주문과 함께. 이 같은 노력 덕에 1,2주일에 한번정도 라운드를 했어도 70대 타수를 유지할 수 있었고 간혹 이븐파까지 쳐냈다. 동료나 선배들의 초콜릿도 수 없어 따먹었다. 그러나 골프는 알 수 없는 것이다. 10년 넘게 전쟁을 치렀으면 이젠 평화도 찾아올 만도 하건만 필자는 또다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스포츠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지난해에는 4월부터 무척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6월의 월드컵 광풍을 현장 일선에서 체험했고 부산 아시안게임까지 치러냈다. 10월에는 US LPGA투어인 CJ 나인브릿지클래식의 운영본부장으로 국내최대의 골프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런 와중에서 불과 6개월정도 클럽을 놓았더니 골프가 무너졌다. 지난해 11월초 20년 동안 몸담았던 언론계를 떠났고 이후 다소 한가하게 라운드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골프는 바람난 여인처럼 사라진 것이다. 거의 매홀 파온에 실패하면서 간신히 86타를 기록했다. 볼은 클럽의 스윗 스팟에 단 한번도 맞지 않았다. 스윙이 무너지면서 타점이 스윗 스팟에서 1cm 정도 틀어졌다. 스윗 스팟에서 1cm 정도 벗어나면 방향을 물론이고 거리도 10m 정도 줄어든다. 필자는 이제부터 1cm 를 찾기 위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김진영기자 eagle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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