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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키신저의 좌절


미국 외교의 대명사로 꼽히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지난 1973년 미국ㆍ북베트남(월맹)ㆍ월남과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한 주역이었다. 키신저는 베트남의 평화정착에 대한 공로로 월맹 공산당 정치국원이었던 레득토와 함께 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얼마 뒤 전쟁은 재발했고 1975년 월남은 공산화가 됐다.

유엔 한국대표부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핵 문제에 관해 얘기하면서 키신저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키신저는 이 한국 외교관을 만난 자리에서 베트남이 개방된 후 비밀이 해제된 외교문서를 보고 느꼈던 좌절감을 토로했다. 당시 월맹이 내린 지침은 '죽어도 미국에 양보해서 평화를 얻을 필요가 없다. 미국이 받아들이지 못할 제안을 해서 전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때까지 협상을 질질 끌라'는 것이었다. 키신저는 '과연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북한 역시 지난 20여년간 6자회담을 포함한 숱한 교섭이 진행됐지만 핵을 포기할 의사 없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지원을 얻고자 했을 뿐이라는 게 명백해졌고 3차 핵 실험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에서 '대화'로 변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대화로 이어졌던 2006년ㆍ2009년 두 차례의 핵실험 때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당장 유엔은 지난달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에 대응해 채택한 결의 2087를 포함해 기존 결의를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여기에는 무력 제재를 제외한 모든 압박 수단이 동원될 것이라는 게 유엔 외교가의 일치된 전망이다. 미국은 대화를 포기하고 북한을 고사로 몰고 가는 강경노선을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중국 역시 유엔 결의에 동의하는 것은 물론 식량ㆍ원유 등의 공급을 줄여 북한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최고조로 올라갈 것이 자명하다. 한국과 미국의 새 정부가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택하려 하는 시점에 북한이 굳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을까. 키신저의 좌절이 한반도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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