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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리의 엠바고 위반
입력2003-04-27 00:00:00
수정
2003.04.27 00:00:00
통계는 약속이다. 돈과도 직결된다.
남보다 앞서 경제지표를 알 수 있다면 한발 앞선 판단과 전망이 가능하다. 선택과 투자에서 성공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주요 경제지표를 공개하는 데 시간을 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주요 정책이나 지표를 발표하면서 언론에 엠바고(embargoㆍ일정시점까지의 보도유예)를 요청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남보다 먼저 쓰고 싶은 욕심에 의도적으로 엠바고를 위반하는 기자들도 종종 있다. 이 경우 제재가 따른다.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까다롭다. 엠바고의 대상이 훨씬 포괄적이다. 정부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물론 민간의 통계, 심지어 증권회사 애널리스트의 종목분석까지 일시에 공개하도록 강제한다. 모든 지표는 뉴욕시장 개장 30분전에 공개된다. 정책당국자나 국회의원, 경제분석가와 일반인이 경제정보는 접하는 시간이 똑 같다. 정책을 담당하거나 통계를 생산ㆍ관리ㆍ보고받는 사람들이 정보를 미리 발설했을 경우는 처벌이 내려진다. 발표자료를 인쇄하는 사람들도 주식을 사고 파는 것도 내부자 거래에 포함시킬 정도다. 모든 게 공평한 룰에 의한 정보의 공유를 중시한 데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뒤죽박죽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일반국민이 통계 정보를 접하는 시간도 늦은 편이다. 통계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할 책임이 누구보다 큰 경제부처의 수장이 스스로 엠바고를 위반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24일 열린 국회 예결위에서 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경제의 지난 1ㆍ4분기 성장률이 3.9%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분기 성장률은 정책의 향방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계다. 분기가 끝나고 한달 반이 지나야 나오는 성장률 통계는 한은의 `상시 엠바고`로 잡혀 있다. 위반시 처벌이 가중된다는 뜻이다. 그런 지표의 엠바고를 부총리가 깼다.
한 나라의 경제부총리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잠정통계치를 말하는 게 그리 대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권위주의로 되돌아 가자. 물론 성숙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에서도 권위는 중요하다. 하지만 권위는 원칙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통계는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약속이 한번 깨지면 반복되기 십상이다.
<권홍우<경제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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