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ㆍ중견기업 연구개발(R&D) 지원사업 비중을 40% 이상으로 늘려나가겠습니다."
이기섭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은 21일 취임 6개월을 맞아 서울 충무로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단독 인터뷰를 갖고 "과거에는 R&D 역량을 갖춘 곳이 대학ㆍ출연연ㆍ대기업 정도에 그쳤지만 이제는 중소ㆍ중견기업의 R&D 능력이 많이 높아져 비중을 확대해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지식경제부의 R&D가 접근 문턱이 높고 대기업과의 공동 R&D 과제가 많아 불합리한 사례가 많았다. KEIT는 지경부의 산업기술 R&D 기획ㆍ평가ㆍ관리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기관으로 올해 산업기술 R&D 투자예산 4조9,000억원 중 절반에 가까운 2조원을 집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R&D 문턱을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중견ㆍ중소기업이 지경부 R&D의 주관기관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대기업의 경우 미래 선도산업이나 전기자동차와 같이 리스크가 큰 대규모 사업이나 대기업의 R&D 기여가 큰 사업에 한해 주도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기업 참여가 높았던 것에 대해 "실제 사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요 기업이 지향하는 바도 고려해야 하므로 대형 과제에는 대기업 참여가 불가피한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또 "동반성장 R&D에 대한 적극적인 기술 지원, 대ㆍ중소기업의 R&D 상생협력 지원, 중견ㆍ중소기업 육성 지원을 통해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배가시키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R&D 투자 효율성 극대화
우리나라의 정부 지원 R&D 과제 성공률은 98%다. 실패에 대한 우려가 크고 R&D 예산도 분배에 치중됐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나눠먹기 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 원장은 "R&D 성공률이 너무 높고 리스크가 적은 사업 위주라는 것은 확실하다"면서 "성공률이 50%까지 낮아지더라도 혁신성과 사업성이 있는 기획을 많이 확대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실패 과제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뤄지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R&D가 실패했다고 무분별한 비판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원장은 "선진국에 비해 적은 R&D 예산으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으로 R&D 자금 운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실제 우리나라가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R&D 분야에 투자한 예산은 68조원에 이르고 올해는 16조원을 처음 돌파했지만 미국의 R&D 투자액에 비하면 10분의1 수준, 일본에 비교해도 3분의1에 불과하다.
이 원장은 "리스크(난이도)가 큰 하향식(Top-down)의 원천기술형 중장기(3~5년)과제와 리스크가 낮은 상향식(Bottom-up)의 혁신제품형 단기(1~3년)과제의 비율을 적절히 조화시켜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문턱이 낮은 R&D시스템을 구축하며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촉진하는 내용의 '현장공감 R&D전략'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R&D 투자 확대 늦추지 말아야
R&D 예산 이야기가 나오자 이 원장은 "국가 경제가 커지는 만큼 R&D 예산이 커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R&D 예산 증액에 한계가 있다 보니 예산이 신규 사업보다 계속적인 사업에 치중됨을 지적한 것.
그는 "핀란드ㆍ스웨덴ㆍ스위스 등 북유럽 강소국을 보면 집중적인 R&D 투자와 일류 첨단기업 육성을 통해 국가 선진화를 이뤄내고 있다"면서 "복지 분야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신성장동력 확충을 위해서는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원장은 또 "국가 R&D자금은 엄청난 경제적인 부가가치와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데 있어 핵심 '씨앗'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도 연구개발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과 연구진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이 원장은 "우리나라의 R&D정책도 미국ㆍ독일ㆍ일본 등 기술 선진국과 같이 시장을 리드하는 선도자(First Mover)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산업기술 분야는 세계 각국이 앞다퉈 전략적으로 뛰어들 만큼 경쟁이 치열해 선도기술ㆍ원천기술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우리가 세계 1등 기업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하기 위한 시작점이 R&D라는 것.
기가코리아, 바이오, 의료 분야에서 블루오션 기대
우리 경제는 자동차ㆍ휴대폰ㆍ반도체가 핵심 엔진이 돼 성장을 이끌어왔다. 이제 차세대 성장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 원장은 "우리는 세계적인 정보기술(IT)력을 갖추고 있어 기술 간, 산업 간 분야를 결합하고 우리만의 독창적인 감성을 조화시킨다면 보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순수 IT 분야에서는 '기가코리아(Giga Korea)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 원장은 "유무선 네트워크 인프라를 기가급(Gbps) 이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오는 2020년까지 차세대 단말기, 소프트웨어, 플랫폼, 콘텐츠 등을 개발해 모든 인간과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초연결(Hyper Connectivity) 시대를 건설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신산업 분야에서는 IT 융합, 나노, 바이오, 의료기기 등을 꼽았다. IT 융합제품시장만 보더라도 지난해 이미 49조7,000억원 규모가 됐고 2020년이면 117조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원장은 "선제적으로 IT 융합시장을 점유하는 한편 바이오기술(BT)과 나노기술(NT), 보건의료기술(HT), 로봇 분야들이 대부분 시장 초기 단계이므로 한발 앞선 기회를 포착해 우리의 먹거리로 창출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비 집행 투명성 높여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연구 수행자의 연구비 유용이나 횡령사건은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다. 실제 적발해내기도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원장은 "실시간연구비관리시스템(RCMS) 도입, 평가위원 자동시스템 운영, 평가위원회 외부 감시단 운영, 제재부가금제도 도입 등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 개선을 통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왔다"고 밝혔다. RCMS는 금융망과의 연계를 통해 연구비 사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세금계산서 등 증빙서류를 검증한 뒤 연구비를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연구자의 윤리의식을 고취시킬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국가의 어려운 예산을 R&D를 위해 주는 것이니 잘 쓰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제도ㆍ시스템 개선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연구 수행자의 도덕 수준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KEIT는 2009년부터 투명한 연구비 집행을 다짐하는 푸름(Purum) R&D 선언식을 갖고 있으며 주기적인 청렴 메시지 발송과 청렴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부당한 청탁행위를 방지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기 위해 청탁등록시스템을 내부 전산망에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탁을 받은 임직원은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되고 청탁자는 청탁 기록이 남는 심리적 부담으로 청탁 자체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는 설명이다.
현장경영·소통 강화… 대한민국 기술 세계화 'K테크 전도사' 황정원기자 garden@s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