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인천지검에 특별수사팀을 만들어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씨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지난 4월 중순만 해도 유씨는 수사 당국에 협조적인 것처럼 보였다. 4월23일 아들 유대균·혁기씨 집 등을 압수수색했음에도 법률대리인인 손병기 변호사를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가진 재산으로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틀 뒤인 25일에는 "검찰이 부르면 출석할 것"이라고도 했다.
검찰은 유씨의 태도에 마음을 놓고 유씨의 주요 측근에 대한 수사부터 차근차근 진행했다. 유씨가 구원파 본산인 경기도 안성시 금수원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서도 금수원 진입은 나중으로 미뤘다.
마침내 유씨에게 소환 조사를 통보한 것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이 지난 5월16일. 유씨가 소환 조사에 말 없이 응하지 않았는데도 검찰은 "유씨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인 만큼 법질서를 지켜주리라 믿는다"며 낙관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유씨가 5월20일 영장실질심사에도 나오지 않자 검찰은 부랴부랴 21일 유씨에 대한 영장을 들고 금수원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유씨는 이미 한참 전인 4월23일 금수원을 빠져나간 것으로 이후 밝혀졌다. 과거 오대양 사건 수사를 받으면서 검찰의 수사 시스템을 훤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수사 초기부터 발 빠르게 도주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검찰은 유씨가 전남 순천 송치재휴게소 부근 별장에 숨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5월25일 급습했지만 유씨는 역시 한발 앞서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별장에 같이 있던 측근 양회정(55)씨를 따로 전북 전주에 보내 수사 당국의 눈길을 돌리는 용의주도함을 보이기도 했다.
유씨는 별장에서 멀리 가지 못하고 송치재에서 2.5㎞ 떨어진 곳에서 숨졌으나 검경은 18일 동안이나 유씨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검경은 유씨의 죽음조차 모른 채 막대한 수사력을 전국 각지에 퍼부었다.
22일 발견된 유씨의 메모는 3개월여에 걸친 수사당국에 대한 농락을 잘 요약해놓았다. "눈 감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기나긴 여름 향한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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