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하며 비틀거려도 역사는 조금씩 진보한다. 꿈을 비웃어도 인간은 보란 듯이 신화를 만든다. 태양의 서커스는 희망과 환희의 징표이다. 90%의 수익이 도박에서 창출됐던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산업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1992년 라스베이거스에 상설 공연을 하겠다고 나서자 사람들은 비웃었다. 16년이 지난 현재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무려 5개의 태양의 서커스 작품이 상설로 자리잡았다. 도박의 도시는 50% 이상의 매출이 쇼비즈니스 등 관광산업에서 거두는 관광 중심지로 거듭났다. 지난 15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텐트극장(빅탑)에서 개막한 태양의 서커스 9번째 작품 '알레그리아'는 메마른 객석에 웃음과 믿음의 씨를 뿌렸다. 스페인어로 '환희'를 뜻하는 제목처럼 웃음은 탄성으로 전이됐고 기쁨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시작은 공연의 안내자 격인 '플러'와 6인조 악단의 '뽕필' 충만한 음악이었다. 플러는 객석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더니 한 관객을 일으켜 세운다. 이 관객의 손을 잡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버리더니 혼자만 입장한다. 돈 내고 입장한 관객을 쫓아내는 도발적 행위에 공연장에선 폭소가 터져 나왔다. 15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관객의 입맛을 맞춰 온 이 공연은 영리하다. 웃음의 맥을 정확히 짚어낼 줄 안다. 서커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광대 크라운들은 관객을 공연에 참여 시키며 객석의 몰입도를 높였다. 공중그네, 불쇼 등 주요 서커스의 긴장감은 이내 웃음으로 이완되며 객석의 호흡이 자연스럽게 조절됐다. 공연에 등장한 다양한 서커스는 묘기보다는 예술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텀블링을 선보인 '브롱크스'들은 기계 체조의 기술성을 넘어섰다. 공중에서 4번을 회전하거나 마치 하늘을 걷는 듯한 '에어워크' 동작은 중력의 법칙에서 자유로운 다음 세대의 몸짓을 말해줬다. 공중그네에서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지상 안전망은 공연 중에 설치됐다. 무대 전환을 위해 휴식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예측은 깨졌다. 지상 안전망 설치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1분. 운영은 능숙했고 기술은 뛰어났다. 8자형의 매끈한 무대, 분위기를 이끄는 조명과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음악은 서커스의 태생적 한계를 깨뜨렸다. 한없이 가벼울 듯한 소재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명작으로 거듭났다. '새로운 형태의 독특한 예술'이라는 다니엘 라마 태양의 서커스 CEO의 설명은 정확했다. 12월 중순까지 (02)541-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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