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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통계를 보는 눈

얼마 전 어느 대학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고 캠퍼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강의실을 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한쪽에서 학생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어느 건장해 보이는 남학생이 휠체어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장애자용 경사로를 올라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눈가리개를 한 여학생이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위태로이 길을 찾고 있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조력자이자 관찰자로 함께하는 듯 보였다. 최근 유엔 통계위원회에 참석, 장애인 통계가 글로벌 통계 시스템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들은 차에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장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직접 장애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잠시 우리나라의 장애인 통계수치를 살펴보자. 보행에 장애가 있는 지체장애자를 포함한 우리나라 장애인구는 지난 2005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4.6% 정도이고 이는 미국ㆍ영국ㆍ캐나다 등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장애인구가 적다거나 장애 복지 서비스 수요가 낮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국제간의 통계수치를 비교할 때는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통계조사의 결과라는 것은 통계처리 과정상의 기술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만 한 사회의 가치관ㆍ의식수준ㆍ제도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자기 집에 장애인이 있다고 선뜻 응답하기 쉬운 분위기가 아니다. 중증장애나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 더더욱 그럴 것이다. 조사된 통계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통계는 개념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장애를 물리적 장애로 한정하느냐 정신적 장애를 포함하느냐, 아니면 일상생활의 활동제약까지 포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조사대상 범위도 서로 다를 수 있다. 우리나라는 0세부터 대상으로 하는 반면 일본은 18세 이상의 성인을 기준으로 장애통계를 작성하고 있다. 유엔은 2001년 6월 장애지표 표준안을 권고했다. 현재 77개국의 국가통계 기관과 7개 국제기구가 참여(워싱턴 그룹)해 장애지표 표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표준화가 된다고 해서 앞에서 지적한 문제점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가 처한 현실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부분들은 발생하게 마련이며 이를 간과하면 자칫 좋은 통계들이 무의미한 논란거리와 혼란만 주는 독이 될 수 있다. 통계를 가지고 남을 속이려는 자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통계의 한계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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