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23일 또다시 7% 이상 급락하며 1,000선 붕괴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근의 증시 급락에는 외국인과 함께 투신권의 매도공세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외국인은 전날보다 2,500억원 이상 ‘팔자’세를 줄였지만 투신은 나흘 연속 매도세를 키워가며 2,500억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코스피 하락이 이어진 최근 3거래일간 투신이 내다판 주식만 5,600억원에 이른다. 금융위원회가 이날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정작 투신권의 반응은 냉랭하다.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대책만을 바라보다가 자칫 생존 자체가 불투명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장이 되살아날 결정적인 반등 모멘텀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지금과 같은 투신의 매도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투신의 현금 비중이 높아져 주식 매수 여력이 생긴 만큼 향후 찾아올 유동성 장에서 다시 한 번 ‘기관의 힘’을 보여줄 것이란 견해도 없지 않다. ◇정부 지원책보다 제 살길 찾기=정부는 이날 “투신 등 기관투자가가 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를 통해 자금을 공급해주는 형식으로 유동성 지원에 나설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일선 자산운용사들은 이 같은 조치는 펀드런(펀드 대량환매 사태) 같은 극단적 상황이 닥쳐야 현실화될 것으로 내다보며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모습이다. A운용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금융기관은 정부의 도움을 받는 순간부터 정상적인 경영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게 옳다”며 “자산 손실을 투신사가 직접 떠안았던 과거 IMF 외환위기 이전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이 무차별적으로 팔고 나가는 상황에서 유동성을 지원해줄 경우 기관투자가가 몰락할 수 있는 위험이 없지 않다”고 토로했다. 사실 투신은 정중동의 자세를 지키고 있다. 이날 투신이 장중 한때 4,000억원 가까운 매도세를 보였다가 장 막판 1,500억원 가까운 매수세를 연출한 것은 프로그램 비차익거래를 통한 순매수에 힘입은 것에 불과하다. 김영일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최근 투신의 거래는 프로그램이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며 “현 장세는 펀드매니저가 주식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상황이 못 된다. 기껏해야 환매에 대응하는 정도의 수동적 대응에 나서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현금비중 높아져… 유동성 장세 이끌까=최근 투신은 펀드 환매에 대비해 자금 확보에 나서왔다. 그 결과 90%를 웃돌던 주식형 펀드의 주식비중은 지난 21일 기준으로 85.62%까지 낮아진 상태다. 특히 최근 환매가 급증한 해외 주식형펀드의 경우 주식 비중은 81.89%까지 떨어졌다. 가장 우려되는 펀드 환매 움직임도 조금씩 늘어나는 분위기다. 이날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는 이달 들어 21일까지 2,112억원의 누적 순유출을 기록했고 해외 주식형펀드 역시 7월부터 4개월 연속 순유출을 기록하며 2억3,953억원이 빠져나갔다. 90조원에 달하는 주식형펀드 순자산총액에 비하면 아직 유출 규모가 크진 않지만 펀드 수익률이 더 악화된다면 지금껏 환매를 참아왔던 투자자들의 실망이 커지면서 자금이탈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 한편에서는 투신사들이 현금 확보에 꾸준히 나서온 만큼 현 지수대에 대한 바닥권의 인식이 커지면 다시 한번 기관 매수세를 이끌 수 있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한종석 KT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바닥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긴 쉽지 않다”면서도 “반등 타이밍이 나오면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실탄(현금)은 다들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IMF 외환위기 때도 겪었지만 큰 폭락 뒤에는 20~50% 수준의 되돌림 현상이 찾아오는 만큼 지금의 매도세는 조만간 멈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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