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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전쟁] [기자의 눈/7월 17일] 지금 국회는 '해방직후' 혼돈기

“영국에서는 의회가 밤새 불을 밝히면 국민이 편하게 잠을 이루지만 우리는 국회에 밤새 불이 켜져 있으면 국민이 불안해서 잠을 못 잔다.” 모 초선 국회의원이 최근 기자에게 한 농담이다. 깊은 자조감과 함께 내뱉은 그의 말은 입법활동보다 정쟁에 몰두하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 15일 국회에서는 정말 웃지 못할 코미디가 또 한편 만들어졌다. 국회법에 따른 임시국회를 거의 한달 가까이 늦게 열고도 다시 20여일의 공전을 거쳐 겨우 열린 6월 국회 첫 본회의. 그러나 본회의가 끝난 후 여야는 그 자리에 눌러 앉아버렸다. 쟁점법안인 미디어 관련법과 비정규직법의 국회의장 직권상정 추진과 이의 저지를 위해서다. 그것도 여야가 본회의장에 마주 보며 대치, 점거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여든 야든 어느 한 쪽에서 국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이를 밀어내려는 대치는 있었지만 이처럼 본회의장 의석에서 여야가 마주보고 앉아 밤을 새우는 점거 농성은 일찍이 없었다. 이에 대한 국민적 비판은 이제 혐오의 경지에 오른 듯싶다. ‘국회 해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이며 ‘저질 코미디 국회’ ‘금치산 국회’ ‘가사(假死) 국회’라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양보 없는 극한 대치를 두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과거에도 야당이 극렬 투쟁하면서 의장 단상을 점거한 일이 있지만 여야가 동시에 본회의장을 점거한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질타했다. 무엇보다 이번 점거 농성은 여야가 본회의 후 퇴장하기로 한 이른바 ‘신사협정’을 깨고 이뤄졌다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상대가 나가지 않을 것 같으니 우리도 남는다’는 단순한 논리이지만 서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실체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대의정치의 중심지로서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 내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서로를 전혀 믿지 못하는 최근의 정치 현실로 미뤄 보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국회에서 가장 먼저 실종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특히 17일은 제61주년 제헌절이다. 정치권의 점거로 인해 일부 제헌절 행사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언급처럼 제헌 의원들이 지금 국회를 보면 뭐라고 할까. 21세기 초일류 국가를 꿈꾸는 대한민국이지만 2009년 제헌절을 맞은 국회는 좌우가 극한으로 대립하던 해방 직후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름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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