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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하면서도 절실한 첼로 선율이 폐부를, 심장을 찌른다. 흐느낌을 꾹 참은 대신 잊지 않겠다는 견고한 다짐을 남기는 선율이다. 러시아 작곡가 안톤 아렌스키의 피아노 삼중주 D단조 '비애(Elegia)'다. 아시아 최대의 클래식 음악축제로 자리잡은 '대관령국제음악제'의 하이라이트인 '저명 연주가 시리즈'가 시작된 24일은 세월호 참사 100일째 날. 음악제 공동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첼리스트 정명화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자매는 화려한 개막작 대신 추모곡을 택해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의 협연했다. 이 곡은 아렌스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장이자 첼로 연주자였던 친구 카를 다비도프의 죽음을 애도하며 헌정한 곡이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대관령국제음악제가 다음 달 5일까지 강원도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는 남유럽 지중해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풍성한 음악을 주목해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주제로 잡았다. 일찌감치 매진된 '저명 연주가 시리즈'의 첫 무대는 보케리니의 '기타 오중주'로 기타리스트 수페이 양의 연주에 스페인 댄서 벨렌 카바네스가 특별히 함께 했다. 카바네스는 30일 '스페인의 밤' 행사에서도 '스페인 민요 모음곡'과 '판당고' 등의 연주에서 열정의 춤을 보여줄 예정이다.
첼리스트 지안 왕이 수페이 양의 기타와 협연하는 피아졸라의 탱고와 '마누엘 데 파야'의 낭만적인 스페인춤곡, 첼리스트 리웨이 친이 들려줄 솔리마의 '라 폴리아' 연주 등은 클래식 애호가들을 사로잡는다. 실내악 위주였던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처음으로 솔로 타악기를 위한 무대도 마련됐는데,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친 퍼커셔니스트 박윤이 진은숙의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를 연주한다.
바흐에 대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오마주도 매혹적이다.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인 손열음, 김태형, 김다솔은 30일 '오마주 투 바흐' 무대를 준비한다. 하프시코드와 오르간,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각각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하며 각자의 개성을 드러낼 계획이다.
알펜시아 내 '뮤직텐트'는 1,300석 규모의 반(半) 야외식 공연장으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백미다. 올해는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스타들이 처음 음악제를 찾아 뮤직텐트를 감동으로 채운다. 메트로폴리탄의 주역인 소프라노 캐슬린 김과 메조 소프라노 엘리자벳 드숑이 26일 밤 로시니의 오페라 아리아를 선사한다. 또 국립합창단과 테너 정호윤, 바리톤 박흥우가 합세해 모차르트의 미사곡인 대관식 미사 15번 C장조, K.317을 들려준다.
예술감독인 첼리스트 정명화는 차이코프스키와 베토벤의 곡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슈베르트와 비발디의 곡을 들려주며 음악제 관객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10년간 대관령국제음악제 누적 관람객은 33만6,000여명이고 국내외 유명음악가 500여명과 예술인 8,000명 이상이 참가했다. 음악학교는 29개국 약 1,400명의 학생이 거쳐갔다. 2008년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음악제의 경제유발효과가 150억원에 이른다. 그간 한국의 대표 음악축제로 브랜드를 구축했고 강원도 관광 활성화와 문화가치 상승 등에 기여한 것을 종합하면 파급효과는 수백 억 원 이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올해는 행사 협찬사도 12곳이나 늘어 30개 이상 기업이 후원사로 나섰다. 익명기부자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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