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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유일하게 화학기반 연구로 원가경쟁력 높고 제품 수명도 길어
전기차 이어 가정용 배터리 곧 출시… 中에 연 10만대 생산 공장 추진도
삼성SDI "유럽·북미시장 공략 강화"… 세계적 車부품사 배터리부문 인수
中에 연 4만대 공장 하반기 완공… 전기자전거 등 새 시장 발굴도 적극
프랍하카 파틸 LG화학 미국연구법인장은 지난 4월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열린 국제전기전자공학회 수송전기화 전략회의에서 현지 기자들로부터 "테슬라와의 경쟁을 우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파틸 법인장의 답변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크리티컬 매스(충분한 시장 규모)'가 필요한 상황이고 기술 발전과 시장 확대를 이끄는 기업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이후의 치열한 경쟁은 예정된 일이다. 테슬라는 최근 수년 사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석권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파트너인 파나소닉과 미국 네바다주에 대규모의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인 '기가 팩토리'를 짓고 있다. 테슬라는 내년부터 가동될 이 공장의 생산 능력을 오는 2020년 연 50GW로 늘릴 방침이다.
시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테슬라지만 업계에서는 LG화학·삼성SDI 등 한국 기업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 간의 전면전은 수년 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가정용 배터리 시장에서 맞붙는 테슬라ㆍLG화학=불씨는 이미 붙었다. 최근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핫이슈는 LG화학과 테슬라의 가정용 배터리 출시 계획이었다.
LG화학은 4월22일 북미 전력변환시스템(PCS) 기업인 이구아나와 손잡고 가정용 배터리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제품보다 설치가 쉽고 가격도 저렴한 가정용 배터리를 개발해 오는 3·4분기 북미 시장에 출시하고 공동 영업·마케팅에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4월30일에는 테슬라가 최초의 가정용 배터리인 '파워월(Powerwall)'을 공개했다. 벽걸이형 배터리를 표방한 파워월은 최대 10㎾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으며 설치비까지 합하면 약 440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하지만 테슬라가 전기차로 쌓은 브랜드 효과에 힘입어 제품을 공개한 지 일주일 만에 3만8,000여건의 예약이 쇄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가정용 배터리 시장은 올해 4,300억원 규모에서 오는 2020년 3조5,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작은 시장이지만 미리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배터리 제조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가정에서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산다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가며 가정용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설치를 장려하는 유럽·북미 등지에서는 점차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LG화학의 한 관계자는 "배터리 용량 등의 기술력과 가격 등이 시장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북미·유럽·일본 등 시장이 형성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현지 유통업체와 함께 우리 제품의 공급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기업들, 전기차 시장에서 위상 굳힌다=현재 가장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우위를 굳히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 르노, 포드, 폭스바겐, 현대·기아차, 아우디, 다임러와 중국 상하이자동차 등에 지금까지 약 40만대 분량의 배터리를 공급한 LG화학은 내년부터 한층 치열한 경주가 시작될 것이라고 보고 시장 공략에 한창이다. 내년부터 전 세계 각국의 연비·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차 시장의 성장세도 보다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을 이끄는 권영수 전지사업본부장(사장)은 "지금 일등이라고 해서 안주하면 안 된다. 경쟁사들이 넘볼 수 없는 확실한 세계 1위를 달성해야 한다"고 내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전지사업 부문에서 지난해보다 10% 이상 증가한 3조1,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은 중국 난징에 연 10만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삼성SDI 역시 중국 시안에 연 4만대 이상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하반기에 완공할 예정이다. 유럽·북미에서의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한편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기차 신흥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은 양사에 비해 아직까지는 사업 규모가 작지만 "배터리 공장을 효과적으로 지어 시장 수요를 전략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것이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의 포부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300㎿h(전기차 1만5,000대 분량) 규모의 충남 서산 공장을 700㎿h 수준으로 증설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중국 베이징자동차, 다임러그룹 등 기존 협력사뿐만 아니라 신규 파트너를 확보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기술력 강화·신시장 확보 활발=앞으로의 배터리 사업 성장을 위해 국내 기업들은 기술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작고 오래 달리면서도 안전한 배터리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 LG화학은 한번 충전에 200마일(320㎞)을 달리는 배터리를 수년 내 상용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LG화학은 전 세계 배터리 제조사 중 유일하게 화학을 기반으로 한 업체라는 점에서 원가 경쟁력이 높다. 이를 기반으로 연구개발(R&D)을 진행해 안전성을 높인 분리막, 에너지 밀도를 높여주는 '스택&폴딩(Stack&Folding)' 기술, 차량 디자인에 맞춰 적용하기 쉽고 수명도 긴 파우치형 배터리 제조 기술을 확보한 바 있다.
삼성SDI는 2월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사인 마그나슈타이어의 전기차 배터리팩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배터리 셀·모듈 부문의 경쟁력에 마그나의 역량을 더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일관 체제를 구축하고 유럽·북미 등지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밖에 새로운 배터리 시장을 발굴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스마트 기기 등 소형 2차전지 시장에서 5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한 삼성SDI는 전동공구·전기자전거 등으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SDI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플렉시블 배터리를 공개한 데 이어 앞으로 웨어러블 기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 B3에 따르면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기업의 지난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49.5%를 기록했다. 2011년까지만 해도 시장의 80%를 독식했던 일본 업체들(지난해 48.9%)을 처음으로 넘어서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기업의 진정한 도전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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