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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69.출협 회장으로서의 편린

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는 1947년에 창립됐으니 햇수로 56년이 된다. 출협은 우리나라 출판인의 구심체로서 출판의 자유를 위해 싸우면서 정부의 출판정책 수립에 적극 참여해 왔고 다양한 도서의 발행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의 발전과 향상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다 보니 출협 회장은 단순히 출판계만의 대표가 아니라 사회 지도급 인사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한 속에 정계의 유혹도 있고 개인적으로 또 다른 의지를 품었던 전임 회장 중 몇 분은 국회로 나가기도 했다. 출협 회장이 되자 내게도 각계의 예우가 깍듯해지고 각종 모임이며 집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나는 `권위`보다는 효율과 실질을 추구하는 협회장이 되고자 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관례적이었던 임원진 대동 없이 혼자 참여했다. 그 동안 폐쇄되었던 협회내 기자실을 복원해 기자들이 언제든지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업계 관련 기사를 수시로 제공했다. 이는 협회 운영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일환이기도 했다. 출판계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또는 상대가 누가 됐든지간에 직접 찾아가서 만났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으며, 한 번에 설득이 안 되면 몇 번이라도 찾아갔다.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출판계를 위해서, 또 나를 믿고 협회를 맡겨 준 이들을 위해서라는 떳떳한 명분이 있었기에 언제나 거리낌이 없었고 당당할 수 있었다. 협회장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개인 출판사업도 다음 차순이었다. 그러는 동안 내게도 정계의 유혹이 없던 바는 아니었지만 단호히 뿌리쳤다. 그것은 회원들로부터 출협 회장이라는 직함을 이용하여 다른 꿈을 꾼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회장으로 있던 `96년부터 2001년 사이에 출판계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홍역을 겪었다. 저작권법 개정 문제, IMF사태, 대형 도매상의 부도, 무분별한 복제렉뭘渶?인한 학술도서 출판의 위기, 도서유통 현대화 작업, 학습참고서 채택 문제, 인터넷 서점의 할인판매와 도서정가제 등 출판계에 영향을 미칠 큰 사건만 해도 열 몇 가지가 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이 출판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해결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 중에서 일부 학습참고서 채택 부조리 문제는 출판인들이 구속되고 조사를 받는 등 출판계에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것 같았다. 검찰에서는 이번 기회에 학습참고서 채택에 얽힌 부조리를 뿌리뽑겠다는 단호한 태도였다. 나는 이 문제를 그냥 뒀다가는 출판계에 엄청난 손실이 따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출판계에서 학습참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데다가 연간 거래액수도 4조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출판연구소 이사장과 부회장, 사무국장과 함께 사건을 담당한 검찰의 부장검사를 찾아가 만났다. 만나서 인사를 나누면서 “잘못을 조사하는 것은 검찰의 일이지만 그것은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는데 뜻이 있지 않느냐, 이 일로 인해 자칫 우리나라 출판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 출협 회장인 내가 책임지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니 조사를 중단해 달라”고 하자 부장검사는 어떻게 책임지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현재 학습참고서의 정가에는 채택료가 포함돼 있다. 현정가에서 20% 낮게 정가를 책정하면 채택료도 사라지고 서점도 더 이상 할인판매를 못할 것”이라고 하자 부장검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알았다. 출협 회장이 책임지겠다니 그 약속을 믿겠다” 하고는 구속한 사람과 조사 받던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안대희 부장검사(현재 대검중수부장)였다. 우리 일행이 밖으로 나오자 많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검사와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다. 이튿날 신문마다 학습참고서 정가 20% 낮추면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부담이 몇 천 억 줄어든다고 대서특필했다. 이 일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나를 믿어 준 사람들과 또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평범하고 명망도 없던 내가 그처럼 당당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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