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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5만원권 탓에… 돈이 안돈다

한은 "부유층 세원노출 기피도 한몫"

한국은행은 돈을 예년 이상으로 찍어내지만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용경색의 기미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행은 돈이 돌지 않는 이유를 저금리와 5만원 중심의 발행으로 해석했다.

14일 한은 금융시장팀의 김철 과장, 표상원 조사역은 '주요 통화 관련 지표동향 및 평가' 보고서에서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가 하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화승수란 광의통화(M2)를 본원통화로 나눈 값이고 통화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M2로 나눈 것이다. 모두 중앙은행이 푼 돈이 시중에 얼마나 잘 도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 2000년 초반 25배 수준에서 오르내리던 통화승수는 금융위기인 2009년 3ㆍ4분기 이후 뚝 떨어져 2013년 5월 현재 20.9배까지 내려왔다. 2000년 1ㆍ4분기 0.87이었던 통화유통속도 역시 2011년 4ㆍ4분기 0.72, 2013년 1ㆍ4분기 0.70으로 꾸준히 하락세다. 신용경색이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경제침체 등으로 부도가 늘어 신용이 떨어지면 돈의 회전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하지만 이들은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신용경색의 징후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금융경제구조 변화, 제도ㆍ정책 변경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통화승수의 하락세는 5만원권의 발행과 저금리 기조로 현금 보유 성향이 강화된 게 주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편리성을 앞세운 5만원권이 자기앞수표를 대체한데다 저금리 기조로 현금을 통장에 넣을 유인이 떨어지며 돈이 은행이 아닌 집안 장롱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5만원권 발행효과 등을 제외하고 통화승수를 다시 구해보면 2009년 이후에도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통화유통속도의 하락 역시 새 금융상품이 생기고 금융산업이 성장하는 '금융 심화'에 따라 실물경제보다 통화 수요가 더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금이 다른 사람의 대출이 되고 이것이 투자상품 등으로 유입되면 투자 받은 측이 다시 파생상품에 돈을 넣는 식으로 같은 양의 돈을 갖고도 금융기관의 자산ㆍ부채가 늘어나게 됐다는 식이다.

보고서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발행물량 대비 5만원권 유통이 근래 들어 유독 감소하는 것에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경제민주화 대두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자산가일수록 세원 노출을 꺼리는데 최근에는 아예 돈을 5만원권 지폐나 금괴 등으로 바꿔 직접 보유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해졌다"고 말했다. 돈이 돌지 않는 또 다른 큰 이유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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