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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전 세계 석유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었기에 수요 예측이 가능했지만 공급은 그렇지 않았다. 공급 가용량이 문제가 아니라 석유 비축분을 통제하고 실제 생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했다. 산유국의 입장에서 석유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계속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때 초창기 시나리오의 힘이 등장했다. 석유회사 쉘은'위기 시나리오'를 만들어 산유국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타당한 수준 이상으로 생산량을 늘리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실제로 1973년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시나리오 분석이 전통적인 예측 방식으로는 불가능했을 방향으로 기업의 사고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나리오 경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로열더치쉘의 시나리오 기획을 담당했고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 템플텐칼리지의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는 시나리오 경영의 역사부터 원리, 실행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시나리오 기획은 미래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조직 내 전략적 대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시나리오 수립 과정에 세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미래를 통제할 수 있고 최고의 해결책과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믿는 합리주의, 상황이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전략은 오로지 돌이켜 보았을 때만 이해할 수 있다는 진화론적 관점, 합리주의와 진화론 사이에서 최적의 전략을 추구하는 과정주의 관점이 있다. 저자는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고려하면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 관점으로 풀어나가기 어렵고 이 세 가지 관점은 모두 유효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경영자가 어떤 관점을 취하더라도 미래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기획할 때는 이 세가지 관점을 모두 이용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시나리오는 조직 내 전략적 대화의 과정이다. 조직 내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전략적 대화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 사고방식이 많이 겹쳐도 위험하다고 말한다. 조직원 모두가 똑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면 조직 내외에서 미약하게 발생하는 신호들을 폭넓게 인식할 수 없고 획일적인 '집단 사고'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전략적 대화를 위한 최고의 언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시나리오는 조직 구성원들 사이의 시각차를 인정하고 상황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며 행동을 취할 때 분명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3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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