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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24> 자소서와 자소설


한때는 기자도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썼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대입과 취업을 준비하니까요. 취준생들에게 기업을 설득하기 위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스펙 못지않게 인격,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자소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너무 솔직하게 쓰면 자신이 볼품없어 보이고, 지나치게 미화하면 ‘자소설’이 되어버리기에 상충관계에서 항상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 어떤 분들은 10분 만에 자기의 삶을 담담히 써내려가며 누군가를 감동시킨다고도 하지만, 어쩌면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대가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사회 경력이 적은 젊은 사람이 자기를 누군가에게 효과적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가슴 떨리는 과제입니다.

그런데 꼭 취업준비생들만 자기소개서를 쓰지는 않습니다. 기업의 경영자인 임원들이 노동 시장에서 이동을 할 때에도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작성하고, 면접을 본다고 합니다. 이런 행태는 기관장인 사장이나 원장들에게도 같이 적용됩니다. 물론 신입사원과 달리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점과 다이나믹스가 작동하는 자리겠지만요. 얼마 전 어느 공공기관에 지원했다 떨어진 모 교수가 기자에게 재미있는 말을 해 줬습니다. 자신이 조직에 처음 입사할 때 썼던 자기소개서나 기관장 응모를 하면서 썼던 자기소개서 모두 많은 고민과 생각의 연속이었다는 겁니다. 스스로의 장점을 드러내면서 개성을 인지시켜야 할지, 아니면 진솔한 사람 됨됨이를 보여줘야 할지 망설였다고 합니다. 결국 낙방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는 5일간 공들여 쓴 자기소개서를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서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력서가 보여주지 않는 다양한 삶의 면모와 자질들을 축약해서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직무에 대한 태도, 인간관계,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등을 사례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자소서’의 순기능입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창의력이 상실된 요즘 시대에 ‘톡톡 튀는 자소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 싶습니다. 수많은 취업 컨설턴트들이, 또는 전문가들이 ‘개성 있는 자기소개서’의 포맷까지 가르치니까요.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이나 문법에 있어서조차, 누군가의 의견을 비는 걸 보면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얼마 전 글로벌 숙박 서비스인 에어비앤비(Air B&B) 신입사원 채용에 응모했던 어느 여성 지원자의 자기소개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른바 ‘소셜 자기소개서’입니다. 그녀는 정해진 포맷이나 세간의 경향에 따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에어비앤비의 시장 경쟁력, 앞으로의 전망 등을 매우 간명하게 쓴 포트폴리오로 여러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에어비앤비의 창업자가 직접 그녀를 칭찬하며 뽑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다양한 면이 공존합니다. 입체적인 인물을 평면적인 종이 한 장으로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라면 나만의 색깔을 가장 나답게 표현하는 법을 먼저 고민해보아야 하겠죠. 나다운 나를 녹여낼 수 있는 건 족집게 취업 컨설턴트도 취업의 달인으로 불리는 선배도 아닌 스스로뿐이라는 뻔한 결론을 내봅니다. 그리고 가끔은 뻔하지만 길은 그것뿐이라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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