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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짱돌'과 '열공' 사이

"총투표의 가부결 여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우리의 뜻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일뿐입니다." 최근 서울 지역 4개 대학이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동맹휴업 선포식을 한 직후 이화여대 총학생회 관계자가 한 말이다. '파편화'된 요즘 학생들을 동맹휴업 대열에 대거 동참시키기는 힘들 것이라는 체념 때문이었을까. 이틀 후 실시된 총투표는 정말'상징적인 조치'로만 끝났다. 고려대와 서강대는 투표함을 열기 위한 최소한의 유효투표도 얻지 못했다. 서강대의 한 학생은 "시험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투표를 못했다"며 "등록금이 내리기를 누구보다 바라지만 공부하랴 생활비 마련하랴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행동에는 나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맹휴업이 무산된 뒤인 지난 1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5,000명가량만 참석했다. 집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참여인원은 1,000명 안팎 수준이다. 등록금이 동맹휴업에 나설 정도로 중요한 문제임을 생각하면 이처럼 소수 학생들만 행동에 나선 게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거리로 나서지 않은 대학생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집회 참가자가 촛불을 들고 있는 이 순간 누군가는 장학금을 타기 위해 악착같이 도서관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 현장을 부리나케 누비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커녕 사는 것 자체를 걱정해야 되는, 그래서 거리로 나설 수도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시선을 줘야 할까. 반값 등록금은 대학생들에게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살고 죽는 문제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요즘 대학생들은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이들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건 대학과 정치권의 고심(苦心)과 합심(合心)뿐이다. 그 결과물이 나올 때 공(功)은 짱돌과 바리케이드에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 각자 자리에서 치열하게 삶을 이어나간 모든 젊은이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훈장을 달아줘야 한다. 먼 발치에서 '광장'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밀실'에서 아등바등 살 길을 모색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학생들에게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우석훈 교수도 저서 '88만원 세대'에서 '지금 우리나라 88만원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바리케이드와 그들이 한 발이라도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필요한 짱돌이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서지 않는 학생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야 할까.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선 젊은이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낼지언정 짱돌을 못 든 학생에게 힐난의 화살을 쏘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념이 아닌 생존의 문제임에도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대학생들의 현실은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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