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은 '왜, 누가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와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 개헌은 국민의 권익신장과 국가발전의 백년대계를 위해 순수하고 뜻있는 국민들이 주체가 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개헌 논의는 이유도 분명하지 않고 국민이 아닌 정치꾼들이 계절마다 정파와 당리당략을 위해 권력장악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작태로만 보인다.
당리당략 넘어 통일·국민통합 겨냥
영국과 미국은 세계에서 헌법과 법치주의 정신이 제일 잘 준수되며 살아 숨 쉬는 국가다. 영국은 불문헌법 국가이고 미국은 225년 동안 헌법을 단 16줄만 고쳐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꾼이 당리당략과 정권획득, 장기집권을 도모하기 위해 국력을 소모하면서 정부수립 이후 8번이나 준헌법제정 또는 개정을 했다. 자주 고치다 보니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누더기 헌법을 만들어놓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악용했기 때문에 숨 쉬는 헌법이 아니라 숨죽인 헌법이 되고 말았다.
현재 헌법개정 내용으로 논의되고 있는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과거에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미국의 부통령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가운데 제일 쓸모없는 제도이고 대통령이 죽기만을 바라는 직책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권력 누수와 갈등, 국정난맥상만 초래한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과거나 현재나 단임도 하루가 365일같이 지루하게 생각되고 당분간 중임시킬 만한 인물도 없기에 불필요하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외치와 내치를 분점시키는 이원집정부제 개헌도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권한은 많이 가지려 하고 책임은 전가하기 때문에 역시 권력 갈등과 국정난맥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 9차 헌법개정(제정)의 배경과 과정, 내용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만약 꼭 개헌을 해야 한다면 백년대계(百年大計)의 남북통일과 영호남 화합 그리고 다양한 정당, 세분화되고 개인화된 국민들의 다양한 견해와 이익을 하나로 녹여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의원내각제 개헌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념과 정책으로 뭉쳐진 정당과 책임 있는 정치인도 없고 계파와 당리당략, 돈과 권력의 압력과 매수로 이합집산과 계파정치·철새정치꾼만 득실거리는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는 순수 의원내각제 개헌도 한 달에 한번꼴로 내각과 정권이 교체되는 정치공백과 정치불안을 일으킬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안정성 높은 독일형 내각제 모색을
따라서 의원내각제를 보완하는 독일형 개헌이 현재의 헌법을 보완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헌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회의원은 4년 임기 동안 절대 당적이탈(정당해산 포함)을 금지하고 의회의 내각불신임은 집권 1년 이후부터 임기만료 6개월 전까지로 하며 차기 총리 후보를 합의했을 때 가능하도록 하면 잦은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불안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에게는 국가통합의 상징성과 함께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중재와 조정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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