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인 '한남더힐'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일반분양이 아닌 '민간임대분양'을 선택했다. 이후 월세가 400만여원에 달하는 재벌 2세들과 연예인들의 임대아파트로 한 차례 유명세를 치렀다. 5년 뒤 분양전환 시점인 올해 한남더힐은 적정 분양가를 놓고 시행사와 입주민 간 감정평가액 차이가 사상 초유인 50억원까지 벌어지며 논란을 일으켰다.
분양가상한제가 전면 재도입된 지 7년이 지나면서 분양가 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경기 침체에 따라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분양가 인하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다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분양'도 시장에서 활용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77년이다. 이후 1999년 분양가를 전면 자율화했지만 투기 우려로 2007년 모든 주택을 대상으로 분양가 규제를 다시 적용했다. 이에 따라 제도 도입 직후 한남더힐과 같은 고급 아파트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선 임대 후분양전환'을 택하기도 했다. 임대 후 분양전환을 할 경우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분양가가 산정되기 때문에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분양가 규제 안 하면 집값 급등?=최근 주택시장도 분양가상한제 폐지 필요성에 힘을 보탠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분양가가 높으면 오히려 청약 미달사태가 발생한다"며 "사실 고분양가 상품이 시장에 흡수될 가능성이 낮은 상태"라고 말했다. 분양가가 과도하게 높을 경우 미분양이 발생해 건설업계의 자금 유동성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가격 급등 우려가 낮다는 설명이다.
특히 분양가 상승에는 건축비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률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단순히 규제를 푼다고 집값이 급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동아시아 대도시 주택 가격 변동성 비교분석' 보고서를 통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 변할 때 각 도시의 주택 가격 변동률은 △서울 2.16% △도쿄 0.29% △홍콩 0.69% △타이베이 0.33%로 한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거시경제 성장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밝혔다.
◇'안전판' 남기고 상한제 풀어야=현재 국회에서 2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분양가상한제 관련 법안은 원칙적으로 상한제를 폐지하는 대신 △보금자리주택과 공공택지 내 민영주택 △주택 가격 급등 우려 지역 주택의 경우 상한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9년 분양가상한제 완전 폐지를 골자로 발의된 주택법 개정안에 비해 탄력운용 방침을 담은 현 개정안이 주택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진단한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서민들을 위해 공급하는 주택은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남겨놓고 나머지 민영주택은 시장에 맡기는 탄력적인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축 민영아파트 가격을 규제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에 따라 공공주택은 무주택자들에게 더 합리적인 가격대로 공급하기 위해 규제를 지속하되 민영주택에 대한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해 더 다양한 주택공급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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