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BHP빌리턴이 철광석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대대적인 분사를 단행한다. 원자재 붐이 저물면서 무차별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려온 거대 광산기업들이 본격적인 살 빼기에 나선 것이다.
BHP빌리턴은 알루미늄·석탄·망간·니켈·은 등 5개 사업부문을 통합해 독립기업으로 분사할 것이라고 19일(현지시간) 밝혔다. 대신 BHP빌리턴은 철광석·구리·석유·포타시(칼륨비료) 등 4대 사업에만 주력하기로 했다. 아직 사명(社名)이 결정되지 않은 독립기업은 12만8,000명의 BHP빌리턴 임직원 가운데 2만4,000명을 흡수하며 기업가치는 120억~1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세계 광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분사"라고 전했다.
앤드루 매킨지 BHP빌리턴 회장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분사로 사업구조는 단순해지고 이윤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BHP빌리턴의 핵심 4대 사업은 지난 회계연도 영업이익의 96%를 차지한다. 외신들은 새로운 독립기업의 사업영역이 과거 빌리턴의 주력사업 부문이라는 점에서 이번 분사가 결국 2001년 BHP철강과 빌리턴 간 합병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BHP빌리턴의 '다다익선(多多益善·more is better)' 전략이 끝났다"며 "글로벌 광산업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고 강조했다.
2000년 이후 신흥국, 특히 중국의 원자재 수요가 폭등하면서 세계 광산업계는 소수의 다각화·계열화된 대기업들의 독무대로 변모해왔다. BHP빌리턴·리오탄토·발레·앵글로아메리칸 등 막대한 수익을 낸 거대 광산기업은 닥치는 대로 라이벌 기업을 사들이며 몸집을 불렸다. 독일 주간 슈피겔 산업기자 21명이 공동집필한 '자원전쟁'에서는 "거대 광산기업들이 모든 종류의 지하자원을 생산하고 있다"며 이들의 전세계 자원독점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업계 선두주자인 BHP빌리턴은 발레·리오틴토와 함께 전 세계 철광석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밖에 니켈·구리·코크스탄은 물론 화학비료인 포타시 생산에서도 세계 2~3위에 올라 있다. 리오틴토 역시 철광석뿐 아니라 다이아몬드·알루미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07년에는 BHP빌리턴이 리오틴토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자재 붐이 사그라지면서 거대 광산기업들도 고전하는 형편이다. 호주 자원에너지경제국에 따르면 내년 국제 철광석 가격은 톤당 96.5달러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톤당 200달러에 근접했던 2011년 초에 비하면 절반 이상 주저앉는 것이다. 광산기업들이 신규 광산에 앞다퉈 투자해 만성 공급과잉에 빠진 것도 원자재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세계철강협회는 호주·브라질에서 신규 광산의 채굴을 시작하면서 내년 글로벌 철광석 공급량은 올해보다 1억4,000만톤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상황에 따라 거대 광산기업들의 구조조정도 본격화되고 있다. 매킨지 BHP빌리턴 회장은 성명에서 "지난 2년간 BHP빌리턴은 65억달러어치의 자산을 매각했다"고 밝혔다. 리오틴토는 지난달 호주 고브광산을 폐쇄하고 직원 1,100여명을 해고했으며 파푸아뉴기니 구리광산 투자도 보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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