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경찰은 폭력적이다. 여러분이 투구를 쓰면 경찰은 한술 더 뜰 것이다. 여러분이 소총을 가져온다면 그들은 탱크를 끌고 올 것이고, 여러분이 탱크를 끌고 오면 그들은 B52 폭격기를 출격시킬 것이다. 필연적으로 지는 싸움인 것이다. …집권자에게 명분을 주는 전략은 희생을 부를 수 있다."
미국의 국제 테러리즘과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비판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적 발언으로 '살아있는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미국 언어학자 놈 촘스키. 지난 2010년 파리를 방문한 그는 강연에서 한 청중이 정치 투쟁시의 폭력 사용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1960년대부터 투쟁하는 학생들에게 늘 시위현장에 투구를 가져가지 말라고 조언했다며.
이 책은 지난 6년간 프랑스 국제관계 시사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에 실린 세계 석학 30명의 글 40편을 모았다. 오늘날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세계화 개념의 본질을 드러내고 인간성 회복을 강조한다는 목적으로, 앞서 인용한 놈 촘스키를 비롯해, 에릭 홉스봄,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등이 인권, 민주주의, 평등, 박애주의, 환경보전, 반전평화 등 다양한 국제 이슈를 주제로 내놓은 통찰이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책 서두의 잇달은 두 편의 글로 미국이 '누구도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고, 역사학을 정치적 문제의식이 아닌 인간의 변화과정에 대한 합리적 탐구로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시뮐라시옹(위장)'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세계화의 폭력성이 낳는 증오심, 그리고 테러리즘이라는 절망감의 표현을 설명한다. 현대철학에 해체의 개념을 도입한 자크 데리다는 오늘날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강제하기 위해 제멋대로 국제조약을 정해놓고는, 막상 본인들은 지키지 않고 이를 어긴 약소국만 '불량국가'로 비난한다고 꼬집는다.
전세계 31개 언어, 51개 국제판으로 발행되는 르디플로 한국판 발행인인 성일권은 서문에서 '백화점 인문학' 'CEO 인문학'을 비판하며 이같이 출간 이유를 밝혔다. "우리는 인문학이 본연의 사유와 비판과 실천 정신을 거세당한 채 '가진 자들'의 기름진 교양주의의 지적 장식물로 전락한 오늘의 현실을 응시한다.… 한국 지성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거창한 꿈을 꾸는 한편, 암담한 현실에 대해서는 냉철한 시각과 진단을 잊지 않고자 한다."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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