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3월12일] 간디, 소금행진 권홍우 편집위원 1930년 3월12일, 인도 서부 아메다바드시. 간디가 390㎞ 떨어진 단디 해안을 향한 여정에 나섰다. 목적은 영국의 소금세 신설에 대한 저항. 인도인의 소금 생산을 금지하고 영국산 소금 40㎏당 1루피씩 세금을 부과하자 직접 소금을 만들기 위해 전통 염전을 향해 떠났다. 식민지 수탈에 온 몸으로 맞선 것이다. 간디가 해안가에 도착한 것은 25일 만인 4월6일. 출발 당시 78명이던 일행은 수만명으로 불어났다. 인도인들은 영국경찰들이 내리치는 곤봉에 맞아 쓰러져 가면서도 해안가에 도달했다. 간디가 소금 한 주먹을 집어 들자 영국군 지휘관 하나가 발포 명령을 내렸지만 어느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백미로 꼽히는 소금행진의 정점이다. 인도인들이 조성한 소금밭은 영국 군경의 군화발에 뭉개졌다. 61세의 간디와 그의 아들이 감옥에 갇혔어도 인도인들의 정신은 짓밟혀지지 않았다. 갈수록 저항운동의 불길이 번지자 영국은 1931년 ‘자가 수요를 위한 소금은 생산을 허용한다’는 명분 아래 소금세 신설을 백지화했다. 인도의 저항운동과 국산품 애용 캠페인(스와데시)도 뿌리를 내렸다. 인도 독립의 기반이 놓여진 셈이다. 간디는 모든 인도인들부터 존경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배우고 돈 있는 사람들은 현실론을 앞세워 영국에 대한 협조를 주장하며 간디를 비난했다. 과격저항세력은 ‘비폭력=굴종’이라며 그를 해치려 들었다. 간디 암살도 이들 손으로 저질러졌다. 문제가 내부에 있다는 점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간디의 소금행진 77주년, 비슷한 식민지였던 한국의 요즘 상황은 어지럽기만 하다. 소비재 수입이 30%씩 증가하고 국민들이 해외에서 쓰는 돈도 올해에는 200억달러선을 넘을 전망이다. 입력시간 : 2007/03/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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