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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허무 드라마'로 막 내린 저축은행 구조조정


또 한번 푸닥거리가 끝을 냈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은 풍광이 여지없이 그려지고 있다. 내 돈을 내놓으라는 아우성, 굳게 내려진 금융회사의 영업점 셔터, 검찰에 불려가는 사람들… . 벌써 15년이 넘었다. 금융산업의 기본이 신뢰일진데, 이래서야 대한민국 금융이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지, 깊은 한숨을 토하게 만든다.

사실 3자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참으로 재미없는 드라마였다. 뻔한 등장인물에 결론도 뻔했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2차 구조조정 이후 사형 집행(적기시정조치)을 유예 받은 곳에 생존할 기간을 줬다. 사형 언도자의 몸이 나아지면 자유롭게 몸을 풀어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 뒤 사형을 언도 받은 자들의 몸을 쥐 잡듯이 뒤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몸을 뒤질 때는 멀쩡하다고 넘어갔던 곳을, 이번에는 수상하다면서 병균이 있다고 진단했다. 언도를 받은 사람들은 몸을 씻고 약을 먹고 온갖 치료를 다했는데, 헛수고였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몸을 뒤지는 사람에게 "무슨 이런 진단이 있느냐"고 항거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 만 척이었다. 어느 축구 해설가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을 즐겨 쓰지만, 이번 구조조정은 너무 단순한 각본에 따라 움직인 드라마였다.

이런 식의 퇴출 작업이라면 몇 개월 동안 사형 집행을 미룬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난해 한꺼번에 하려 했는데 너무 커서 미룬 것인지, 세인의 추측대로 총선이 끼여 연기한 것인지, 대선을 앞두고 뭔가 이용해볼 요량이 있어서였는지, 어느 누구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신 퇴출을 앞두고 벌어진 풍광들은 의문 덩어리만 잔뜩 던져줬다. 발표도 나오기 전 대상 저축은행 오너가 대놓고 반발하는 모습은 15년 구조조정 역사에서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진위를 떠나 당국은 이런 과정이 생긴 것에 심각하게 반성할 부분이다.

뿐인가. 당국 내에서도 들어서는 안 될 말들이 쏟아졌다. 사석이라지만, 상부 조직인 금융위원회에서는 "금융감독원이 너무 가혹했다. 검사 나간 금감원 직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고, 금감원에서는 "그러게 왜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금감원을 건드렸느냐"는 허무개그들이 난무했다. 구조조정이 저잣거리의 패거리 싸움도 아니고, 하물며 보복의 산물이 돼서는 절대 안 됨에도, 이번 구조조정에서 벌어진 일은 가슴을 너무 헛헛하게 만들었다.



예금자 돈을 빼서 밀항하겠다고 하는 경영자까지 나타나는 모습에는 황당함마저 품게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구조조정 집도의라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이끌었는데도 말이다.

이쯤 해서 금융 당국은 자문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국민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았다고 자부하는지, 정말로 순수하게 구조조정 자체만을 목적으로 했는지 말이다. 퇴출 이후 몰려든 예금자들을 향해 "너무 우매하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3년도 안 돼 한 업종의 퇴출 드라마를 3번이나 쓰는 감독 당국은 그들을 향해 돌팔매를 던질 자격이 없다. 퇴출된 저축은행 오너 등 뒤에서 호가호위하던 사람들이 바로 감독 당국자들 아니던가.

구조조정은 시장에 새로운 기운을 주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하는 것이 첫째 목표다. 그런데 양파 껍질처럼 자꾸만 썩은 모습만 들춰내는 것을 정상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을까.

재미없는 드라마를 3번이나 틀어주는 것도 모자라, 온갖 노이즈를 품어대는 모습에 당국자들은 참담한 마음으로 반성해야 한다. 퇴출 드라마를 쓰면서 잘못된 정책에 대해 되짚어 보지 않는 관료들도 머리를 숙여야 한다. 3번의 퇴출 드라마에 쓴 돈이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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