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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교' 정지우 감독 "나이 든 사람 속마음 표현 원작의 솔직함에 매료됐죠"

70대 시인·제자·소녀 파격적 삼각관계 그려<br>원로배우 대사리딩 녹음해 박해일, 노인 목소리 연습<br>싱그러움에 관능미까지 김고은은 흙 속의 진주


"나이 든 남자의 마음을 저렇게 정직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원작을 읽고 뻔뻔함이 느껴질 정도의 '솔직함'에 매료됐죠."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지우(44·사진) 감독은 박범신의 동명 원작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은교'는 스승의 재능을 질투하는 패기 넘치는 제자(서지우)와 시인의 세계를 동경하는 소녀(은교), 소녀의 싱그러운 젊음과 관능에 매혹 당하는 당대 위대한 시인(이적요)의 삼각관계 그려낸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시나리오에 적합한 원고지 80∼90매 분량으로 줄이는 작업이 정 감독의 첫 과제였다.

"중간 지점부터 이야기의 구조를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지우와 이적요의 관계가 원작보다 슬림(단순)해졌죠. 남자들 사이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경계하는 젊은 남자, 젊은 남자가 두 사람의 관계를 경계하는 게 불편한 노인, 이렇게 삼각의 틀 안에서 어느 두 항이 붙으면 나머지 한 사람이 비집고 들어가고자 하는 것을 구조의 핵심으로 삼았어요."

이야기의 얼개와 더불어 삼각 구도를 잘 표현해내는 인물 묘사가 정 감독의 또 다른 과제였다. 10대 소녀의 매력에 빠져드는 70대 노인을 알맞게 그려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은 선해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박해일 씨가 호감이었어요. 나이든 것은 분장을 통해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극 중 이적요의 목소리 역시 그냥 얻어진 건 아니에요. 이적요 대사 리딩을 나이 지긋하신 배우들에게 부탁해 녹음하고 그걸 반복해 들으면서 해일씨와 함께 노인 말투를 어떻게 할 지 고민했죠."

시인 이적요 못지 않게 '손녀 같고 어린 여자 친구 같으며 아주 가끔은 누나나 엄마 같은'소녀 은교를 그려내는 것 역시 만만찮았다. 정 감독은 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다.



"고은이한테는 관능의 유혹자로서의 눈빛이 있는가 하면 보듬어 주고 싶은 구석도 있었죠.무엇보다 혼자 남겨져 있을 때의 기분을 아는 친구 같았어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고 그 마음은 눈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정지우 감독, 그의 섬세한 관찰력과 감정선은 영화 곳곳의 장면에서도 배어난다. 특히, 스승의 재능을 탐한 서지우가 최후를 맞는 장면은 숨을 멎게 만든다.

"극 중 서지우는 스승에게서 빼앗지 말아야 할 것을 빼앗아 정당화 했고 스승을 완벽히 자기 것인 냥 모사 했어요. 괴롭힌 수준을 넘어 스승을 부정한 거죠. 그런 서지우를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벌 주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차가 굴러 떨어지는 사고 장면이 아닌 차 안의 서지우 얼굴만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원작자 박범신은 영화'은교'를 두고"내 글이 영화와 드라마로 열 두어 편 만들어 졌지만 그 동안의 어떤 작품보다 존재론적 주제를 제일 깊이 담아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극 중 이적요가 강단에 서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읊조리는 것 외에는 129분 가량의 시간 동안 늙음에 대한 자기 연민과 서글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영화'은교'의 저변에 깔린 주제, 심오한 메시지가 한 번에 와 닿지 않는 이도 있을 테다. 정 감독은 이 같은 의문에 이렇게 답한다.

"'중학교 2·3학년 수준에 맞추는 것이 대중 영화의 핵심이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늘 같은 음식을 먹는 것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잖아요. 직관적으로 오는 느낌, 웃음, 두려움, 공포, 쾌감 같은 건 이제껏 충분히 느껴보셨으니, '은교'를 통해서는 찬찬히 내용을 곱씹어 이해하는 과정을 즐기며 오랜만에 여운을 맛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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