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세기 프랑스를 통치했던 프랑수아 1세는 소르본대 교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탈리아 전쟁 등 대외정책과 중앙집권화 등의 국내정치 모두 성공했지만 교수들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제대로 된 조언은 없었다. 학문은 상아탑 안에서 교수들끼리만 해야 한다는 그들의 도도함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수아 1세는 지난 1530년 '왕립교수단'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 최고의 지식인을 모아 왕만을 상대로 강연하도록 했다. 별도의 학생이 없는 교수들만의 대학으로 1870년 '콜레주 드 프랑스'로 이름을 바꿨다.
왕이 없어진 후 지금 이곳의 교수들은 누구에게 강의를 할까. 이들의 학생은 막대한 연구비와 봉급을 지원해주는 국민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 몸담은 60여명의 석좌교수들에게는 1년에 12시간씩 대중을 상대로 공개강연을 해야 한다는 의무만 주어진다.
이 대학의 교수들은 노벨상 수상자, 필즈 메달 수상자 등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다. 강연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과학이나 인문학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당대 최고의 지성인에게 강의를 듣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프랑스인들이 많다. '왕을 위한 대학'이 이제는 '국민을 위한 대학'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물론 석학들의 연구내용을 일반인이 모두 이해할 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들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강연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누구도 번거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노력으로 여긴다. 필즈 메달 수상자인 장 크리스토프 요코즈 교수도 "내가 받은 혜택을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이다. 강연을 들은 학생 중에는 미래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꿈꾸는 이들도 많다. 석학이 곧 롤모델이 된 셈이다.
25일 한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강연이 열렸다. 전국의 도서관 30여곳에서 100여명의 과학자들이 어린아이와 학생을 위해 강연을 했다. '10월의 하늘'이라고 명명된 이 행사가 올해로 벌써 5년째다.
이 행사는 2010년 정재승 KAIST 교수가 트위터에 "1년 중 단 하루만 자신의 재능을 나누자"고 제안해 시작됐다. '오늘의 과학자가 내일의 과학자를 만나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행사에 지금까지 6,000여명이 넘는 초·중학생이 참여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윤송이 부사장 부부 등 과학을 전공한 유명인들도 강사로 나섰다. 강연자들은 차비부터 강연 준비까지 자비로 모든 것을 부담한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한국 과학계에 자발적으로 시작돼 이만큼 성공한 행사는 없는 듯하다.
'10월의 하늘'이라는 이름은 1999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옥토버 스카이'에서 따왔다. 이 영화는 1957년 미국 탄광촌에 살던 소녀 호머 히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녀는 당시 소련에서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됐다는 뉴스를 듣고 로켓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 후 실제 미 항공우주국의 과학자가 됐다.
10월의 하늘 강연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던 아이들이 수십 년 뒤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나 필즈 메달 수상자가 돼 다시 10월의 하늘 강연에 서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생각만 해도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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